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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일기- 길상암 추억

암자일기

by 문성 2009. 11. 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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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해 스님은 명진 스님의 제자다.  

 

그가 길상암 주지로 부임한 후 길상암의 면모는 예전에 비해 크게 변했다. 명진 스님의 사리탑을 길상암 입구에 조성했고, 대웅전 아래 지장전도 새로 마련했다.    

 

그는 언듯보면 주지가 아니라 절집의 처사처럼 억척으로 일했다. 대개 절의 주지는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고 일반인들이 만나고 싶어도 쉽게 만나 주지도 않는다. 하디만 그는 달랐다. 절의 모든 일은 그가 직접 했다. 지게도 지고 삽질도 했다. 나중에는 과로로 면역력이 떨어져 대상포진에 결려 한동안 고생을 한 적도 있다. 그의 노력으로 길상암은 그 모습이 날로 변했다.

 


스님 뒤를 따라 길상암 108계단을 하나 씩 올랐다.  이 계단은 45도의 오르막이다. 워낙 가파른 길이라 갈지자 형의 계단을 만들었다.  이 길을 한 계단씩 올라갈 때마다 시절 인연이 나를 붙잡았다.   

이제는 갈수 없는 세월 저 너머로 사라진  과거 인연들이다. 그 시절의 일이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그것은 그립고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지금부터 12년 전.
바로 이맘 때 였다.
  그 날도 무척 더웠다. 움직이기만 해도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였다. 폭염이 한 풀 숨을 죽이고 저녁 노을이 차츰 물들일 그 시각에  병색이 완연한 내가 이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그 해 6월 느닷없이 쓰러진 나는 서울대 병원에서 생사의 길림길에서 용케 살아났다.

그후 성종모 사장의 소개로 길상암을 찾았다. 명진 스님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단지 공기 좋은 산사에서 요양하며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이 곳으로 내려 온 것이다.

  지치고 병든 몸으로 숨을 헐떡이며 나는 아내와 경부고속도로- 김천- 성주- 백운동을 거쳐  길상암으로 내려왔다.


 기억에 남는 것은 길상암의 첫 인상이다.


고개를 뒤로 젖혀야 보일 정도의 가파르고 우람한 바위산 아래에 길상암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저녁 무렵이어서 길상암으로 올라가는 108계단을 찾지 못해 입구에서 아내와 한동안 허둥댔다.
겨우 찾은 계단을 오르면서  나는 사지에 맥이 풀려 몇 발자욱 걷지 못해 쉬다 가다를 반복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연신 훔쳤다.  매미 소리가 요란했지만 귓전에 들어오지 않았다. 숨이 차다못해 나중에는 가슴이 쿵쿵 울렸다. 100m 단거리를 끝낸 선수못지 않았다.


 힘겹게 올라간 길상암은 소나무와 참나무 느티나무 들로 둘러 쌓여 넓은 바위위에 참선하듯 자리를 잡고 있었다. 포근함이 감돌아 마치 고향집에 온 느낌이 들었다.  

 “힘들지 않으세요”


주지 스님의 말에 나는 문득 추억 여행에서 멈췄다.

“아니 괜찮습니다. 처음 내가 이곳에 올 때는 몇 번씩 쉬면서 올라왔는데....”

  주시 스님은 길상암 불사를 하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간절하게 기도했다고 한다. 그럴 때마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농담처럼 말했다.

“돈이 없어 그냥 맨손으로 불사를 시작하면 기도한 것만큼 이루게 해 주셨습니다. 기도의 원력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

 길상암은 터가 가파르고 험하다. 가람이 큰 바위 위에 달랑 앉아 있다. 이곳은 기(氣)가 세다고 한다. 기가 약한 사람은 이곳에 살고 싶어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길상암 벽에는 눈에 익은 ‘석가세존 진신사리봉안도량(釋迦世尊 眞身舍利奉安道場)’이란 현판이 걸렸고, 그 옆에는 가로 글씨로  ‘지공승점지(指公僧占地)’라는 쓴 편액도 그대로 있었다.  그 글씨는 세월과 변함없이 여여하게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반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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