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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일기-성철스님의 친필 '해인성지'

암자일기

by 문성 2009. 10. 3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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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로 올라가는 도로는 한산했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때문인듯 했다.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따.
 오가는 자동차도 드문 드문했다.
도로 양옆에는 아름드리 벚꽃나무들이 도열해 그늘터널을 만들어 주었다. 고마운 일이었따. 나무에 매달려 우는 매미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매앰,맴,매앰”

 마치 매미들의 합창대회를 연상하게 했다.  차창을 내리자 청정한 솔바람이 붓물 터지듯 ‘휘익’ 밀려와 얼굴의 열기를 식혀 주었다.   솔향기를 흠뻑 들여 마셨다가 ‘후’하며 내뿜었다.  답답했던 가슴속이 뻥 뚫리고, 무겁던 머리가 개운해졌다.  


 해인사로 가는 길목을 몇 고비 돌자 왼편에 큰 입석이 나타났다.  

해인성지(海印聖地)라는 글씨가 새겨 있었다.  가야산 호랑이로 불린 성철 스님(사진)이 생전에 쓰신 선필이다.  청정하고 자유분망하며, 호탕함이 풍기는 글씨다.
 성철 스님의 글씨는 귀하다. 소장 희망자들이 많다. 성철 스님은 쓴 글씨에 낙관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성철이란 이름 아래 붓으로 점을 하나 찍어놓았다. 내기 본 성철 스님의 글씨는 다 그랬다.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 “자기를 바로 봅시다” 등 주옥같은 법문을 남기셨다.

생전에 스님은 숱한 일화를 남기셨다. 공부하는 스님들한테는 가혹하리만큼 엄하게 대했다.

그런 성철 스님이 극히 드물게 두 번 주례를 선 일이 있다고 한다. 거절하기 어려운 청이었던 모양이다.

 
스님은 주례사로 이런 말을 하셨다고 전한다.

“아내와 남편은 살아가면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상대방이다.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무엇보다 우선하라. 다음은 부모를 잘 모셔라. 세 번째는 자식을 잘 키워라. 그렇게 살면 집안이 편안할 것이다. 그리고 난 다음 사회에 봉사하라.  이런 마음으로 살면 생활이 풍족하지 못해 설사 나물먹고 물 마셔도 행복할 것이다”


성철 스님은 인생 후반기에 가장 경계해야 할 큰병으로 3가지를 말씀하셨다.
 이병에 걸리면 노년에 패가망신(敗家亡身)한다고  강조하셨다.
  그것은 돈 병과 여자 병, 그리고 이름 병이라고 하셨다.  재물과 색, 명예에 집착하지 말라는 견책의 말씀이다. 사람이 살면서 재물과 여자,명예를 탐하다가 오히려 자신을 망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돈 욕심이 지나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여자문제로 망신살이 뻗친 유명 인사도 있다. 또 뒤늦게 이름을 얻고자 고위공직이나 정치판에 뛰어들었다가 패가(敗家)한 사람도 상당하다.

 
 성철 스님이 속세를 떠나면서 남긴 것은 헤어진 옷 한 벌과 고무신 한 컬레, 돋보기 하나였다.

 스님은 지난 93년 11월 4일 아침 7시 홀연히 열반의 노래를 부른 후 윤회의 사슬을 끊고 바람처럼 속세를 떠나셨다.  제자들에게 마지막 남긴 말이  "공부 열심히 하그래이"였다고 한다. 그것은 곧 바른 스님이 되라는 당부였다.
 열반송은 아래와 같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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