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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일기 -인연따라 가는 길

암자일기

by 문성 2009. 10. 28.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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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하순.

나뭇잎은 더위를 먹었다. 열탕같은 폭염에 기진맥진해 축 늘어져 헉헉거렸다. 내 가슴 속에서도 답답증이 용암처럼 치솟았다.  어디론가 바람에 실려 훌쩍 떠나고 싶었다.

 어디로 갈까.  마음의 나침판이 멈춰서는 곳이 생각났다.

“그렇지, 그리움이 머무는 곳, 인연이 살아 숨쉬는 그곳으로 떠나자”

 때 묻지 않아 하얀 광목처럼 청정(淸淨)한 곳. 맑은 하늘과 깨끗한 물, 푸른 숲과 바위.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사람들이 텅 빈 마음으로 사는 곳. 
 그곳은 산속에 몸을 숨긴 암자(庵子)였다.  그 곳으로 단기(短期) 출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진짜 출가는 속세의 옷을 벗는 일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 년 이상 인연이 살아 있는 곳, 한 시절 병든 내 육신의 쉼터였던 곳이다. 그 곳에서  속세에 지치고 멍든 내 육신을 뉘이고 인생 2막을 다시 열고 싶었다.

 일단 떠난다고 마음을 정하고 나자 괜스레 급했다.  배고픈 아이가 엄마 젓을 찾듯 허겁지겁 책 몇 권 과 옷가지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홀로 있을 때 나는 완전히 나다. 벗과 같이 있을 때 나는 반쪽이 된다. 여럿이 있을 때 나는 없다”

레오나드 다빈치가 한 말이다.

 홀로 있어야 나를 찾을 수 있고 성찰할 수 있다. 거울에 먼지가 묻듯 세속의 찌꺼기를 훌훌 털어내려면 관조의 시간이 필요했다.   

성철 스님이 생전에 하신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는 법문의 대상은 바로 나였다.

 나는 인생 1막을 정리했다. 긴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이제 새 무대에 오르는 배우처럼  인생 2막의 출발점에 서 있다.   나를 바로 봐야 내 길을 갈 수 있다.

 집을 나서자  길바닥은 열탕이나 다를 바 없었다.  햇살이 불화살이 돼 대지에 내려 꽂혔다.  삼복(三伏)은 허명이 아니었다.  매미들만 목청높여 자지르지게 울어댔다. 매미소리가 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매앰 맴 매앰”

하늘은 청잣빛이 아니다. 잿빛이다. 깸새가 한 줄기 쏟아 부을듯 하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내가 평소 애송하는 박목월 선생의 시 ‘나그네“’다. 

자동차는 구름에 달 가듯이 가속페달을 밟는대로 경부고속도로롤 내달렸다. 

대전을 지나자 갑자기 날씨가 변덕을 부렸다. 느닷없이 우동발 같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도로위로 아지랑이 같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그것도 잠시다. 10분이나 지났을까.

 이내 빗줄기가 그쳤다.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햇살이 고개를 내밀었다.  여름 소나기는 소등을 가른다고 하더니 빈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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