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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일기 - 단기출가를 위해

암자일기

by 문성 2009. 11. 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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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그리움이고, 돌아봄이다.


그러나 갈 수 없으니 가슴속에 회한이 서린다.  인생이란 되돌아 갈 수 없다. 그저 마음만부산히 오갈 뿐이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桀)은 간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말 학자 길재 선생의 시다.

그는 조선이 건국되자 두 임글을 섬길 수 없다며 은둔생활을 했다. 그 후 한 필의 말에 올라 고려 도읍지인 개성을 돌아보고, 인생무상을 이와 같이 노래했다.



해인사로 가는 길도 예전과 다를 게 별로 없다. 가야산은 녹음에 묻혀 우람했고 소나무와 전나무는 청정했다. 홍류동의 비경도 여전했다. 솔향기와 바람, 물소리 어느 것 하나 변한 게 없다.

변한 것은 사람뿐이었다. 나도 변했다.
 



세월의 심술은 사람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었다. 

 길상암에서 나를 돌봐 주셨던  주지 명진 스님이 열반에 드신지 12년이나 됐다. 추억은 살아 성성하건만 세월을 거슬러 가지 못한다.


 묵언 수행하던 무부 스님과 법대를 나와 출가한 동훈 스님, 그 곳에 살던 아이들, 박 보살과 이, 최 처사 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 시절 추억은 한편의 드라마처럼 기억에 남아 생생한데 그 당시 사람들은 그림자조차 찾기 어렵다.

 홍류동 계곡물은 구도의 염원을 안은 채 힘차게 내닫고 있건만 인걸은 추억속에 남아 있으니
가슴속에 슬픔이 안개처럼 피어 올랐다.



적멸보궁 길상암

길상암은 해인사 입구 매표소를 지나 약 1.5Km를 올라 가다 왼쪽으로 처음 만나는 암자다. 무심으로 차를 달리면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길상암은 불가의 성지(聖地)인 적멸보궁이다. 길상암에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두 곳이나 있다.  보궁은 ’보배같이 귀한 궁전‘이란 의미다.   


 길상암 뒤에 우람하게 치솟은 묘길상봉에 2과를, 그리고 길상암 아래 홍류동 계곡 옆에 34과 등 모두 36과의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지관스님은 “길상암은  석가모니 진신사리탑  2 개를 조성한 불가의 성지(聖地)중의 성지”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5대 적멸보궁이 있다.

 부처님 정골사리를 모셨다는 오대산 적멸보궁과 설악산 봉정암, 정선 정암사, 영월 법흥사,양산 통도사 등이다.
하나 같이 모두 명당인 곳이다.


길상암 아래에 자동차를 세웠다.
홍류동 계곡위에 놓인 다리를 건넜다. 몇 년 전까지는 철제 다리였다. 어느 핸가 홍수로 휩쓸려 간 뒤 신축해 명진 스님의 이름을 따 명진교로 명명(命名)했다.

명진교 아래로 바닥이 다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흘렀다. 홍류동의 물은 숱한 사연을 안고 흐를 것이다. 


길을 건너 미륵존불과 약사여래불,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불광보탑 앞(사진)에서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삼배를 올렸다. 영암 스님과 명진 스님의 사리탑에도 참배했다.


묘길상봉에서 한 줄기 바람이 내려와 단기출가를 하러 온 나를 반기듯 내 등을 토닥였다.  이 곳에서 내가 여름 한 철을 보냈던 시절이 12년 전이다. 

“처사님 오셨어요”


돌아보니 광해 주지 스님이었다.  스님은 사하촌으로 볼일보러 나갔다가 막 돌아오는 길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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