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눈은 이제 서정의 대상이 아니다. 나한테는 그렇다.
눈이 내리면 개띠도 아닌데 마음이 설레고 무작정 좋았다. 마음이 포근했다. 눈 길을 하염없이 걷기도 했다.
얼마전 서울근교로 이사오면서 이틀 연달아 폭설과 만났다. 집앞과 골목길 눈을 치우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군에서 눈 치우기를 한후 가장 눈과 힘겹게 씨름을 했다.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다.
눈은 그냥 눈으로 볼 때가 가장 좋다. 나무가지에 소복소복 쌓인 눈을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폭의 풍경화다. 눈 내린 들판을 걸을 땐 서산대사의 시(詩(시) 답설(踏雪)이 절로 생각난다.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에는
함부로 어지러운 걸음을 하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후대의 길잡이가 되리니
지난 11일 새벽 일어나니 눈이 펑펑 쏟아졌다. 이웃에서 눈치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밖으로 나갔다. 사방이 순백색이었다. 밀대로 눈을 길건너로 밀어냈다. 한 시간여 작업을 했건만 집앞 눈만 겨우 치웠다. 숨이 턱밑까지 차 올랐다. 이마에 굵은 땅방울이 맺혔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에 들었다.
쌓인 눈이 녹을만하니 어제 오후부터 또 눈이 내렸다. 녹았던 눈이 얼어붙고 그 위에 다시 눈이 내렸으니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서울에서 집까지 가다서다를 반복하다보니 2시간 30여분 걸렸다. 평소보다 1시간이 더 걸렸다. 집 근처 오르막길을 앞서가던 택배차가 미끄려져 뒤로 내려왔다. 나도 1단을 놓고 올라갔다. 이미 골목길은 눈이 10센티 가량 쌓였다. 골목길을 돌아가는데 느닷없이 아이가 길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깜짝 놀라 급정거를 하고 보니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있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곳에서 놀면 위험하니 놀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조금 더 가니 앞에 차가 서 있었다. 차를 세워놓고 골목 눈을 치우고 있었다. 나도 차를 세워놓고 눈을 치었다. 역시 1시간 가량 눈과 전쟁을 했다.
아파트 생활을 할 때는 눈 치우는 일은 경비 아저씨들 몫으로 생각했다. 단독주택으로 이사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지자체에서 눈을 치우기 조례를 만들고 과태료 운운하는 일이 이해가 갔다. 나도 조례 제정에 반대했다. 막상 내가 당하고 보니 오죽하면 그런 방안을 내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자기 집 앞 골목길 눈을 치우는데도 얼굴도 안내밀었다. 향약이니 두레니 협동이니 하는 말이 이제는 잊힌 말이 된듯 했다. 시골인심도 변했다.
더 서글픈게 있다. 오늘 서울에 나가보니 눈이 언제 왔느냐 싶을 정도로 도로가 말끔했다. 밤새 공무원들이 눈을 치운 덕분이다. 내가 사는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는 눈이 그대로다. 구 도로는 제설작업도, 염화칼슘도 살포하지 않아 빙판길이고 눈흙탕길이었다. 주요 도로만 제설작업을 하고 뒷골목길은 내버려 둔 탓이다.
눈이 오면 자기 집과 점포 앞 도로 눈은 각자 치워야 한다. 그게 곧 나를 위한 일이다. 이사온지 20여일만에 두번 눈치우기를 하고 보니 그렇게 좋던 눈이 이제는 무섭다. 행정기관도 눈 치우기를 주요 도로만 할게 아니라 이면도로와 뒷골목까지 확대해야 한다. 다 같이 세금내는데 이면도로나 뒷골목 산다고 왜 불공평한 행정서비스를 받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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