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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333> 노무현 후보, 대통령 당선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5. 3. 1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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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날이 왔다. 20031219일은 국민 선택의 날이었다,.

 

이날 국민은 비주류 변방의 정치인인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를 16대 대통령(사진)으로 선택했다. 예상을 깬 민심(民心)의 결정이었다.

 

 

이날 밤 1028분 서울여의도 민주당 2층 기자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감격에 벅찬 표정으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그는 "앞으로 저를 지지한 분들만의 대통령이 아닌, 저를 반대하신 분들까지 포함한 모든 국민들의 대통령으로서 또 심부름꾼으로서 제 최선을 다할 것을 이 자리에서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당사 주위에는 수백 명의 지지자들이 모여 노무현을 연호했다. 그는 '대통령 후보'에서 '대통령 당선자'로 지위가 바뀌어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수십 명의 청와대 경호원이 배치됐다.

 

대통령 선거는 숨 막히는 초접전이었다. 개표결과 노무현 후보는 12014277(48.9%)를 얻어, 11443297(46.6%)를 얻은 이회창 후보를 57980(2.3%) 차이로 누르고 승리했다.

 

정권을 재창출한 민주당은 온통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 패배한 한나라당은 초상집처럼 침통했다. 투표함이 열리기 전까지 이회창 대세론이 선거판을 지배했다. 그러나 국민 선택은 달랐다. 빈농의 아들 노무현은 9회 말 역전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16대 대선의 변화는 기존 선거방식을 뒤집었다는 점이다. 정당 중심이 후보자 개인 중심으로 변했다. 특히 인터넷이 정치적 위력을 발휘했다. 노무현 후보는 인터넷 힘으로 당선된 최초의 서민 대통령이었다.

 

노무현 후보는 200196일 부산롯데호텔에서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했다.

그는 이날 보통사람의 시대를 열어가는 서민 후보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노 후보는 그해 1210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저서 "노무현이 만난 링컨" 출판기념회를 겸한 후원회에서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보통사람들이 살기 좋은 한국을 만들기 위해 16대 대선에 출마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후보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했다. 당원과 국민을 같은 비율로 섞어 선거인단을 구성했다. 인터넷을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을 무작위로 선정해 이들은 선거인단으로 구성했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는 노 후보 외에 김근태(작고, 보건복지부장관 역임), 정동영(통일부장관 역임,현 새정치민주연합 고문) 이인제(현 새누리당 국회의원), 한화갑(민주당 대표 역임), 유종근(전북도지사 역임)씨 등이 후보로 나섰다.

노 후보 캠프는 현역 의원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 노 후보를 천정배 의원(법무부장관 역임. 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처음 공개지지를 선언했다.

 

민주당은 200239일 제주를 시작으로 전국 16개 지역을 순회하면서 경선을 치렀다. 그 결과 16개 지역 중 11개 지역에서 1위를 차지한 노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결정됐다.

 

노 후보는 그해 427일 민주당 전당대회 대선후보수락연설에서 정치 개혁, 원칙과 신뢰, 국민통합의 3대 정권 청사진을 제시했다.

노 후보의 대선가도는 험난했다. 자금과 인력이 모자랐다. 막판에는 지지율이 급락해 후보교체론에 시달렸다. 고난 끝에 그는 그해 1125일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여론조사에서 이겼다. 하지만 국민통합 21은 대선을 하루 앞둔 18일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 철회를 선언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막판 파란이었다. 노 후보에겐 엄청난 위기였다. 이회창 후보에겐 막판 역전의 기회였다. 하지만 대선의 월계관은 노 후보 차지였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대법원 판사, 중앙선관위원장,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거치면서 원칙에 충실한 대쪽 이미지를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특히 국무총리 시절인 1994422일 오후 김영삼 대통령과 충돌한 후 사표를 냈다. 이 일은 그에게 전화위복이 돼 국민에게 `대쪽 총리`라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한나라당은 그해 413일부터 경선을 시작해 59일 이회창 후보를 대선후보로 결정했다. 대선 재수(再修)였다. 한나라당 대선후보로는 최병렬(서울시장 역임), 이상희(과기부장관 역임), 이부영(열린우리당 의장 역임)이 나왔지만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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