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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1>고 노무현을 만나러

여행. 맛집. 일상

by 문성 2017. 10. 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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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1>고 노무현을 만나러.

가족과 23일 국내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가족여행은 폭염이 한 물간 9월초 휴가와 겸했다. 두 아들이 가족여행을 위해 같은 기간에 뒤늦은 여름 휴가를 받았다. 당초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로 계획을 세웠으나 내가 대장포진에 걸려 해외여행을 취소했다. 아쉽지만 도리가 없었다.

여행 계획은 언제나 처럼  큰 아이가 세웠다. 숙박할 곳도 큰 아이가 예약했다. 몇 년 전 가족이 가보자던 천년 고도 경주가 최종 여행지다. 편해서 좋았다.

첫 일정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와 사저가 있는 경남 김해 봉하 마을로 정했다. 그곳에서 고 노 전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경주로 가기로 했다.

사람사는 세상,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갈구했던 고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남겼던 유언처럼 이제 한줌의 새로 변해 자연의 일부로 잠들어 있는 곳이다.

오전 10시경 집을 나서 중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록-중부내륙고돗도로를 달려 4시간여만에 진영읍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참배객들이 많았다. 주차는 마을회관 앞에 했다.  

경찰들이 주자를 안내했다. 마음을 생각보다 아담했다. 사저 앞에 고 노 전대통령 생가가 자라잡고 있다. 생가는 전형적인 시골 초가집 모습이었다. 본채는 부엌과 방 두 개, 그리고 다른 한 채는 농기구를 넣는 헛간과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그 뒤 길을 사이에 두고 사저가 자리잡았다.

어릴적 노 전대통령은 머리가 좋아 마을에서 '노 천재'로, 그리고 인사를 잘해 '인사를 잘하는 과수원 막내'로 불렸다고 한다. 

한 때 호화사저니 아방궁이니 했던 정치인들의 말과 사뭇 달랐다. 사저는 호화롭거나 아방궁이 아니었다. 노 전 대통령이 없는 탓인지 마음은 생기가 없고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입구에서 아이들이 하얀 국화를 한 송이 사 들고 왔다. 묘역에 헌화하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평소 자신에 솔직하고 담대했던 고인은 자신이 실현하고자 했던 특권없는 보통사람의 시대를 지금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 까.

노 전대통령은 자신의 유언처럼 작은 비석아래 자산의 일부로 변해 누워 있었다.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적힌 묘비 밑에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문구가 새겨 있다.

대통령 노무현이란 글씨는 당시 조계총 총무원장인 지관스님이 썼다.  그리고 바닥에는 1만5000개의 박석을 설치했다.

묘역 바로 뒤에 그가 생을 마감하며 뛰어내렸던 부엉이 바위가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생사 필멸이라지만 비운의 전직 대통령 삶이다.   

문득 그가 삶을 마감했던 그날 아침이 생생하게 생각났다.

2009523일. 

신록이 상큼한 기분좋은 토요일 아침이었다.

그날 나는 아내와 아침 프로를 시청하고 있었다.

느닷없이 긴급 속보가 화면을 장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방금 전 서거하셨습니다"

국민은 경약했다. 전국이 충격에 휩싸였다.

세계 언론은 노 전대통령의 서거를 긴급 보도했다.

전직 대통령이 투신 자살을 하다니... 세상에.. ”

그게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물처럼 흘러 이제 그가 잠든 묘역에 가족이 온 것이다.

지금도 나는 궁금하다. 도대체 그날 봉하 노 대통령 사저에서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그는 왜 부엉이 바위에서 허공으로 몸을 날려야 했던가. 얼마나 억울했기에 해서는 안될 선택을 했는가.

그는 사저 컴퓨터에 한글 파일로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고통과 갈등이 없는 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갔다.

그는 재임시 인터넷 대통령으로 불렸다. 누구보자 IT를 잘 알고 잘 활용한 대통령이었다. 궁금한 점은 당시 장관이나 보좌관에게 즉각 전화로 물었다. 느닷없는 질문에 깜짝 놀란 이가 한 둘이 아니었다. 

사저는 입구에 경찰이 지키고 있어 가지 않았다. 노 전대통령이 살아 있다면 입구에 나와 인삿말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지나갔다

봉하마을의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샘물처럼 맑았다.  

입구에 방명록이 놓여 있었다. 나는 방명록에 '그 때 그마음'이란 글을 적었다.

봉하마을은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 기회주의가 득세하지 않는 세상, 정의가 살아 숨쉬는 사회를 구현하자는 염원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그 정신을 보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봉하 마을을 찾는다.  그 정신의 실현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태어나기는 부모의 몸을 빌리지만 죽어서는 예외없이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걸 안다면 인간들이 자연앞에서 오만할 수 없을 게다.

늦은 오후 시간인데도 봉하마을로 오는 차량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서쪽 햇살을 배웅삼아 봉하마을을 뒤로 했다.

다음 목적지는 불보사찰인 양산 통도사다. 큰 아이가 운전석에, 그 옆에 둘째가 앉았다. 나와 아내는 뒷좌석에서 편히 쉬었다. 주변 경관을 구경하며. 가슴 저 깊은 곳에서 행복감이 아리랑이 처럼 피어올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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