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오후 마당으로 나갔다. 부채살 같은 햇살이 따사롭다. 볼에 와 닿는 바람결이 매섭지 않고 포근하다. 며칠 간 영하를 밑돌던 날씨가 어제부터 풀린 탓이다. 오늘 낮 온도는 영상이다.
여름내 파랗던 마당 잔디는 가을에 접어들면서 황달이 든 듯 누렇게 변했다. 인간이건 식물이건 절기를 이기는 장사는 없다. 푸석 푸석한 잔디를 밝으며 사방을 둘러봤다. 생동감이 사라진 잔디는 삭막하다.
“어 ,저게 뭐지?.”
마당 한 구석에서 노란색이 눈길을 끌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노란색 민들레 꽃이다. 영하 추위를 이기고 노란 꽃을 피운 것이다. 지금은 민들레가 꽃을 피울 때가 아니다. 의외다.
“야, 대단하네 ”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내가 꽃을 쳐다보자 꽃도 나를 향해 방긋 웃는 듯 했다. 노란 병아리가 생각났다. 꽃이 귀엽고 반가웠다. 손으로 아이 볼을 쓰다듬듯 가만히 꽃잎을 만졌다. 얼음처럼 차갑다. 그래도 민들레는 노란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이 민들레는 철이 없는 건가. 혹은 계철을 모르는 건가. 아니면 홑씨를 날리려는 불굴의 의지인가. 민들레 꽃은 보통 4∼5월에 활짝 핀다. 꽃이 지면 하얀 홀씨를 날려 번식한다.
가을 꽃의 상징은 국화다. 가장 늦게 피고, 지는 게 국화다. 지금은 국화도 자취를 감춘 엄동설한이다. 나홀로 노란 색 민들레 꽃을 피우다니. 기개가 대견하다.
민들레 꽃말은 행복이다. 노란 민들레는 언제나 행복을 안고 살라는 '행복홀씨'를 인간세상에 날리기 위해 찬바람 맞으며 기다린 건 아닐까.
당나라 선승 임제선사는 임제록에서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라고 설파했다. 어디서나 주인 자세로 살면 그곳이 곧 진리의 경지라는 의미다. 저 민들레는 한파속에서 꽃을 피웠다.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한 결과다.
조선시대 대제학 벼슬을 지낸 이정보(1693~1766)선생은 ‘국화야 너는 어이’라는 시조를 남겼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三月東風) 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는다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홀로 활짝 핀 노란 민들레 꽃를 보니 오상고절은 국화 전유물이 아니다. 나홀로 핀 민들레도 오상고절이다.
살다보면 환경에 굴복하거나 타협하는 일이 적지 않다. 이제 환경 탓하지 말고 내 삶에 최선을 다해야 겠다. 포기하지 말자. 하면 한다. 노란 민들레의 환한 미소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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