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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 전원일기-겨울 나그네 ‘고라니’

전원일기

by 문성 2019. 1. 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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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근교 산자락에 등을 대고 살다보니 별별 이색 만남이 있다.

 

사계절 다른 옷을 갈아입는 자연과 만남부터 무명 잡초와 자연화, 고양이 등 별난 해후다.  하루에 몇 번 씩 우리 집을 순찰하는 고양이부터 지난해 여름 텃밭에 심은 채소를 절단 낸 고라니, 까치와 까마귀, 참새와 산비들기 등 다양하다. 한동안 날마다 무리를 지어 아침마다 날아오던 까치와 산비들기는 다른 곳으로 갔는지 요즘은 발길이 뜸하다. 날마오 오던 새들이 안오면 괜히 "무슨 일이 있나"하며 궁금하기도 하다.

 

 

어제 오후에는 몇 달만에 고라니를 만났다. 따스한 햇살이 좋아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사슴과 비슷한 동물이 느긋한 걸음걸이로 집 앞 길을 걸어가는 게 아닌가.

저게 뭐지

아내에게 물었다.

어머 ,고라니가 웬일이야

 

고라니였다. 몸매가 날씬했다. 아마도 겨울철 제대로 먹지 못해 살이 빠진 게 아닐까 싶다.

지난해 여름 내가 텃밭에 심은 상추와 고구마를 칼로 자르듯이 싹뚝 잘라 먹었던 그 고라니인지는 알 수 없다.

 

길을 따라 산보하도 하듯 올라가던 고라니가 잠시 사방을 둘러보더니 울타리를 가볍게 넘어 텃밭으로 들어왔다.

어라 저 녀석이 뭘하려나

고라니는 텃밭을 한 바퀴 돌아보더니 집 마당으로 내려왔다. 소나무 주위를 조심스레 둘러보며 가만히 있다가 풀을 뜯어 먹었다. 말이 풀이지 실제 먹을만한 게 거의 없다. 햇살이 좋아서 그런지 고라니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쉬는 게 아닌가. 겁이 없는 녀석이다.  20여 분 후 자리에서 일어난 고라리는 다시 텃밭으로 올라가 울타리를 훌쩍 넘어 산으로 사라졌다.

 

 

산중에 먹을 게 많다면 고라니가 위험을 무릎쓰고 사람들이 다니는 산 아래까지 내려오지 않았을 게다. 곤궁한 고라니의 처지가 딱했다. 짠 한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삶은 예전에 비해 풍족해 졌다. 예전과 달리 요즘 사람들은 먹지 못해 병이 나는 일은 드물다. 오히려 더 많이 먹고 잘 먹어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많다.

 

동물들은 그럴 수 없다. 겨울철 먹이를 스스로 준비하고 비축할 수 없다. 자연이 주는 대로 그 품속에서 먹고 살아야 하는데 이 엄동설한에 뭘 먹고 살아야 할까. 사는 게 고해(苦海)라더니 인간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다. 고라리가 머물다 간 텃밭으로 올라갔다. 텃밭은 꽁꽁 얼어붙었다. 그 위에 비치는 햇살이 따사롭다삶의 여정에 행복만 있는 게 아니다. 희노애락이 교차한다. 힘들수록 얼어붙은 대지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며 살아야겠다.고난도 삶의 한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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