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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보살' 봉선사 월운 조실스님

사찰기행

by 문성 2019. 4. 2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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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가면 세상을 다시 본다. 승속(僧俗)의 차이, 청정함과 혼탁함, 탐진치와 해탈. 이런 극과 극이 공존하는 게 사찰이다.

 

아내와 남양주시 진접읍 광릉 봉선사에 다녀왔다. 마음이 파도치듯 요동칠 때 절에 간다. 봉선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본사이자 교종 본찰이다.

 

봉선사는 입장료와 주차료를 받지 않는다. 열린 공간이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곳이다. 누구나 마음이 이끌 때 쉽게 올 수 있는 사찰이다. 이름난 사찰의 경우 입장료와 주차를 내야 한다.

 

봉선사에 가면 노스님을 매번 만난다. 월운 조실스님(사진)이다. 세속 나이로 91. 조실은 절 최고 어른이다. 월운 스님은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의 대표 학승이다. 봉선사 주지와 중앙승가대학교수, 동국역경원장을 역임했다.

 

은사인 운허스님 유지를 받들어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역경에 평생을 보냈다. 지금까지 83종의 경을 번역했다. 한국대장경 전318권을 완간했다이 시대의 역경보살로 불린다. 그런 공덕으로 한국학회 외솔상과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후학 양성에도 헌신했다. 봉선사에 어린이 숲속학교를 개설해 어린이 포교에 앞장섰다. 봉선사에는 어린이 집이 있다. 봉선사 능엄학림 학장으로 후학을 양성했다. 봉선사는 반야심경도 한글로 번역해 예불 때 한글 반야심경을 독송한다.

 

큰 절의 주지나 조실 스님은 신도들이 쉽게 만날 수 없다. 아무나 만나주지도 않는다.

월운 스님은 격식타파다. 봉선사에 갈 때마다 의도하지 않게 스님을 만났다스님은 거처인 다경실이나 아니면 길가에 서서 귀한 말씀을 해 주셨다.

 

이번에도 법당에 들린 내려오다가 아내에게 오늘도 스님을 만나는 게 아닐까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말이 끝나자 저 앞에 스님이 서 계신게 아닌가. 스님은 봄볕을 벗삼아 산책 중이었다.

스님 안녕하세요.”

합장하며 인사를 했더니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 주셨다.

오 누구신가 했네

간혹 뵙는 데도 기억하고 계셨다.

 

봉선사 입구에 찻집이 있다. 차를 대접하고 싶어 스님을 모시고 그곳에 들어갔다. 매장 직원들이 스님을 향해 인사를 했다. 자리에 앉자 스님은 커피 반 잔만 주세요라고 하셨다. 카운터에 가서 주문을 했더니 직원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큰 스님에게는 절대 커피 드리지 말랬어요.”

누가요

봉선사 스님들 당부입니다

스님에게 커피가 해롭다고 절대 커피를 드리지 말라고 당부한 것이다. 스님은 최근까지 건강이 안좋아 병원에 다녔다고 한다.

스님 지금 커피는 없답니다. 다른 걸로 드시죠

허허. 몸에 해롭다고 커피는 주지 말라고 한 모양이네

스님은 이미 알고 계셨었다.

스님, 식혜 어떠세요"

좋아요

 

스님과 식혜를 마시며 30여간 많은 이야기를 했다. 부산 범어사에서 지낼 무렵 이승만 대통령을 만난 일화를 비롯, 역경 불사, 봉선사 주지시절 각종 불사. 은허스님이 설립한 광동중.고교 이전 등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은사인 운허스님은 독립운동가였다. 해방 후 교육을 받지 못해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다며 광동중고등학교를 설립했다. 운허 스님 뒤를 이어 월운 스님은 봉선사 옆에 있던 학교를 장현읍으로 이전했다. 소송을 통해 봉선사 토지 수만 여평을 되찾았다.

 

스님은 하루에 관세음보살을 열 번 씩 독송하면 참 좋아요라고 말씀 하셨다. 그러면서 언제 어디서나 삶의 주인이 돼야 한다고 하셨다.

 

대화 도중에 어린아이가 부모 손을 잡고 찻집에 들어오면 마치 손주를 보듯 어디서 왔느냐” “몇 살인고라고 물었다.

 

봉선사 입구에 청풍루사 우뚝 서 있다. 왜 청풍루로 명명하셨느냐고 질문했더니 청풍은 맑은 바람인데 그게 곧 부처님 마음이라고 하셨다.

 

월운 스님은 주시시절인 198431일 가왕으로 불리는 가수 조용필씨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았다.

 

차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님이 거처하는 다경실까지 모셔다 드리겠다고 했더니 한사코 사양했다. 다경실은 차를 마시며 경을 읽는 곳이란 의미다. 다경실은 운허스님 사촌인 춘원 이광수가 봉선사에 머물 때 사용하던 방이다.

 

월운 스님은 다경실로 가시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셨다. 우리를 향해 잘 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짧은 만남이지만 헤어질 때는 서운하다.

 

돌아서서 봉선사를 나오는데 청풍루 처마에 달린 풍경이 봄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울렸다. 청풍이 불고 있었다봉선사에 가면 역경 보살인 노스님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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