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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김형오 공관위원장 “선거끝나면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사람들

by 문성 2020. 1. 1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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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을 떠나 교수와 베스트셀러 작가로 변신했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사진. 전자신문)이 여의도로 돌아왔다.

 

오는 4. 15 공천을 총괄할 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이란 막중한 소임을 맡았다. 한국당 미래가 그의 손에 달린 셈이다.

 

그는 최연속 입법부 수장을 마지막으로 20년 동안 몸담았던 정계를 떠났다. 그동안 국회의장을 지내면 관례에 따라 정치판을 떠났다. 역대 국회의장이 다 그렇게 그런 전통을 지켰다.

 

정계를 떠난 그는 부산대 석좌 교수와 인기 작가로 변신했다. 대표작은 그가 발로 뛰며 쓴 `술탄과 황제`. 이 책은 근래 보기 어려운 38쇄라는 스테디셀러(steady seller)를 기록했다. 5개월여 집필하면서 안경을 세 번 바꿨다고 한다. 그의 다른 시사칼럼집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는 정치·사회분야 판매 1위에 올랐다. 기자출신 답게 그는 직접 취재하고 자료를 모아 만사를 제쳐놓고 오직 집필에만 매달렸다.

 

그는 디지털정치인으로 불린다. 정보통신기술(ICT)에 한국의 미래가 달렸다는 남다른 소신으로 10년 넘게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활동했고, 위원장도 지냈다.

 

디지털 정치인답게 ICT 분야에 굵직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1997년 의정 활동으로 미국 퀄컴에서 CDMA기술료로 2억달러 이상을 벌어 왔다.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으로 돈 벌어온 이는 그가 유일하다.

 

국정감사에서 기술료 배분액 문제를 제기해 정부가 소송을 했다. 3년간 국제상사중재위원회에 소송해서 이겼다. 기술료 배분액 1255530달러를 받았고, 이후 1억달러를 추가로 받았다.

 

그는 한국에서 처음 디지털정당을 추진한 주역이다. 그때 성공했다면 한국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정당을 선보였을 것이다. 2003년에 한나라당이 디지털정당화를 추진했다. 디지털위원회를 구성해 내가 위원장직을 맡았다.

 

당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이었다. 한국은 인터넷 강국으로서 각종 인프라를 잘 구축했다. 그 기반 위에 디지털정당을 만들고자 했다. 당내 다수가 디지털 마인드가 없고 예산과 인력을 지원해 주지 않았다. 고작 홈페이지나 고치는 수준이었다. 정치 구호나 정치 진열장용으로 생각하고 있던 당 대표와 입장도 달라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그는 2003년 과학기술공제회를 설립했다. 3년에 걸쳐 기금 1000억원을 조성했는데 지금은 34000억원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국회의장 시절에는 국정감사에 종이 없는 국감을 도입했다.

 

김 전 의장은 기자로 출발해 국무총리실과 대통령비서실을 거쳐 199214대 국회에 들어가 연속 5선을 기록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과 한나라당 사무총장·원내대표, 이명박정부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 18대 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하고 정계를 은퇴했다.

 

그는 특정 정파에 몸담지 않았다. 자신의 소신에 투철한 원칙주의자란 평가를 받는다.

 

1999년 수필가로 등단했고, `돌담집 파도소리`를 비롯해 몇 권의 에세이집을 냈다. 디지털 정치인답게 현재 블로그(세상을 보는 큰 눈)를 운영하고 있다. 부산대 석좌교수다. 명예직인 백범김구선생사업협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공천 관리만큼은 공정하게 해야 한다""최대한 투명하게, 객관적·중립적·독립적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과 인터뷰에서 공천관리위원장직에 대해 피를 묻히라고 하는 자리라며 죽을 자리를 찾아왔다는 생각이다. 모든 원망과 비난을 혼자 떠안고 가차 없이 해나가겠다. 선거가 끝나면 자연인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가 복잡한 보수통합과 공정한 공천을 어떤 기준으로 국민 눈높이에 맞게 할지, 그 토대 위에 보수의 가치를 어떻게 구현할지 그의 어깨는 무겁다. 하지만 이왕 떠났던 여의도에 돌아왔다면 지탄받는 보수의 판갈이를 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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