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정보통신부 그 시작과 끝 <28>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0. 8. 11. 15:51

본문



 


‘선(先) 국내경쟁 후(後)국제경쟁’.


한국 통신시장 개방의 정책 기조다. 이 원칙은 어느 정권, 어느 장관을 불문하고 손댈수 없는 고정불변이었다.


한국통신시장의 문을 여는데는 3번의 빗장풀이 단계를 거쳤다. 1990년 1차 통신사업 구조개편을 신호탄으로 94년 6월의 2차, 그리고 정보통신부 출범 후인 95년 7월의 3차 구조개편이다. 이런 구조개편 조치에 따라 국내 통신시장은 급속도로 경쟁체제로 변했다. 시내전화를 비롯, 모든 통신부문에 자유경쟁 바람이 몰아 닥쳤다. 정부는 전략적으로 미래를 내다보면서 시장개방 정책을 치밀하게 추진했다. 통신시장 개방은 기존 통신질서의 혁신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신시장 개발시기와 방법, 폭을 놓고 정책당국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렇다면 한국 통신시장은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문을 열게 됐을까. 잠시 통신사업구조 개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이 과정을 알아야 95년 7월 이른바 제3차 구조개편 이후 국내 통신시장에서 벌어지는 ‘재벌들의 통신대전(大戰)’ 드라마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영하의 날씨답지 않게 겨울 햇살이 따사하던 80년 12월 19일.

김기철 체신부 장관(작고)은 청와대에서 전두환 대통령에게 ‘통신사업 경영체제 개편’에 대한 재가를 받았다. 김 장관은 독실한 가톨릭신자로 천주교평신도협의회장과 농림부차관, 제헌의원. 3대.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65년 정계를 떠나 하이파이사 사장, 한국수출진흥 고문 등을 지내다 5공 출범 후 재야에서 발탁된 사람이다.



체신부의 이 방안이 통신사업 경쟁체제 도입의 시발점이다. 이는 한국통신사(史)에 일대 혁명적인 조치였다. 청와대 경제비서실에는 김재익 수석(작고)과 오명 과학기술비서관(체신부장관. 건설교통부장관, 과기부총리 역임. 현 건국대총장) 홍성원 연구관(KAIST서울분원장. 현대전자 부사장.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회장 역임),정홍식 행정관( 정통부차관. LG데이콤부회장 역임)이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처음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 민영화 시점은 1983년 1월 1일로 잡았다. 하지만 오명 비서관이 공사 발족은 이르면 이를수록 더 좋다며 시기를 1년 앞당겨 1982년 1월1일 출범했다고 한다.



민영화 기본원칙은 정부가 직접 운영하던 전기통신사업을 82년 1월1일부터 공기업체인 한국전기통신공사에 넘긴다는 것이다. 정부는 공사의 효율적 경영을 위한 조건도 마련햇다. 먼저 인사의 자율성과 예산 및 회계의 탄력성도 보장해 주기로 했다. 회사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고 책임경영도 확보해 주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공사화에 따른 직원 신분도 보장해 주었다.



체신부는 직할기관 5개와 전신국, 전화국, 전신전화국, 전신전화건설국 등 현업기관 148개 등 153개 기관에 속한 직원 3만5천222명을 한국전기통신공사 소속으로 이관키로 했다. 정부 수립이래 최대 규모의 인사 이동이었다. 정부는 그해 3월 한국데이터통신(데이콤의 전신. 현LG유플러스)도 설립했다.



81년 3월 6일 전두환 대통령은 김기철 체신부 장관을 경질하고 후임에 최광수 전 대통령비서실장(주 유엔대사. 외무부장관 역임)을 임명했다. 최 장관은 5월1일 청와대에서 전대통령에게 체신부 주요 업무를 보고했다. 전 대통령은 이날 “체신부는 대민서비스를 향상하고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는데 역점을 두라”고 지시했다. 81년 5월말 오명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이 체신부 차관으로 승진, 발령났다.


최 장관과 오 차관은 6만8천여명이던 체신부 직원의 공사 배치를 놓고 고심하다 인사원칙을 정했다. 그 누구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지칫 잘못했다가는 엄청난 인사 태풍에 휘말릴 수 있었다.


오명 차관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술했다.

“체신부는 인사이동이 예고된 때부터 온종일 청탁전화에 시달렸다. 제발 우리 아들만은 , 우리 조카와 사위만은 체신부에 남게 해 달라는 전화였다. 나한테도 업무에 방해가 될 정도로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는 친척과 친구의 누군가가 전화를 해서 우리 아들을 부탁한다며 애원했다. 얼마나 많은 전화가 걸려 오는지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몇 다리만 건너면 나와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자서전 ‘30년 이후의 코리아를 꿈꿔라’에서 )


인사원칙은 현재 근무부서를 기준으로 해 전화와 관련한 부서는 모두 공사로 가고, 우편과 관련한 부서는 체신부에 남게 했다. 다만 업무가 전화인가 우편인지 애매한 부서나 체신청에 근무하는 직원은 개인의 희망과 경력을 감안해 결정하기로 했다. 또 정년이 얼마남지 않은 55세 이상의 간부는 체신부에 남도록 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