맴맴맴”
삼복(三伏)더위가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자 청와대 경내 녹음이 우거진 녹지원에서 매미가 자지러지듯 목청을 높였다. 한여름 폭염의 앙탈은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법이다.
초복(初伏)을 이틀 지난 1995년 7월 20일 오전 9시.
청와대 본관 2층 집현실. 김영삼 대통령 주재로 경제확대장관회의가 열렸다. 홍재형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현 국회부의장)과 경제부처 장관, 한이헌 청와대 경제수석(15대 국회의원. 기술보증기금 이사장 역임. 현 한국디지털미디어어고 교장)등 15명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 홍 부총리는 ‘신경제 장기구상 작업계획’을 보고했다. 이어 경제부처 장관들은 차례대로 주요 업무를 요점만 보고했다.
경상현 정보통신부 장관(사진)은 이날 ‘통신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본방향’에 대해 보고했다.
이 보고는 통신시장의 전면 개방을 의미했다. 한마디로 통신시장 개방의 완결판으로 국내 재계의 판도를 바꿔놓을 수 잇는 메가톤급 정책이었다.
통신시장 대변혁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경 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업무 내용을 기록과 증언을 토대로 현장 중계해 보자.
“먼저 통신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본방향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경 장관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계속 말문을 이었다.
“첫째, 선 국내경쟁, 후 국제경쟁‘의 기조아래 대외 경쟁에 앞서 국내 경쟁체제를 조기에 구축하겠습니다. 둘째, 기간통신망의 안정적 운영을 책임지는 주도적 사업자를 육성하겠습니다. 셋째, 통신사업자간에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도록 하겠습니다”
통신시장 개방정책의 골자였다.
“이런 기본 방향에 따라 올 하반기에 국제전화와 개인휴대통신(PCS) 등 7개 분야의 사업자를 신규로 허가하겠습니다. 96년에는 시내 전화를 제외한 모든 통신사업의 허가신청을 개방하여 전면적인 국내 경쟁체제를 구축해 나가겠습니다.
아울러 WTO(세계무역기구)혐상결과에 따라 단계적으로 국제 경쟁을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또한 주도적 통신사업자로서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가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무선사업 등 사업영역 확대를 허용하는 동시에 통신공사의 경영혁신 방안을 조기에 강구해 시행토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통신사업자간 공정한 경쟁이 조성되도록 사업간 회게분리, 내부보조금지, 공정한 상호접속 보장 등의 공정경쟁을 위한 관련 규정과 절차를 개선하고 통신위원회 기능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이런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공청회 등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세부 추진계획을 확정해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풀었던 국내 통신시장의 모든 빗장을 몽땅 열겠다는 보고였다.
김 대통령은 이런 보고가 끝나자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할 뿐 특별한 지시를 하지 않았다. 이미 김 대통령은 1월 6일 연두 기자회견을 통해 세계화를 국정목표로 제시한 상태였다. 세계화를 한다면서 통신 시장 문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경 장관도 1월 9일 대통령에 대한 새해 첫 업무보고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통신 사업자는 늘리고 규제는 풀어 통신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보고했다. 이런 상황인 관계로 김 대통령은 이 문제에 관해 별다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한이헌 경제수석의 말.
“김대통령은 어떤 정책이건 큰 방향이나 원칙만 정해 주고 세부 사항은 해당 부처 장관에게 맡기는 업무 스타일입니다. 작은 일까지 시시콜콜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경 장관의 증언도 이와 일치했다.
“사전에 경제수석을 통해 기본방향에 관해 보고를 받아서 그런지 대통령께서는 ‘알았다’고만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별도의 지시는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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