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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64>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0. 12. 2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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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정통부 이석채 장관


세월의 시침(時針)은 멈추지 않아 어느덧 세밑을 맞은 1995년 12월 21일.


영하의 날씨 속에 검은색 승용차들이 청와대 본관 앞으로 줄지어 들어왔다. 이수성 국무총리와 신임 국무위원들이었다. 차에서 내리는 신임 장관들의 얼굴에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오전 9시 청와대 본관 2층 회의실.

김영삼 대통령은 나웅배 경제부총리(현 전경련 기업윤리위원장)를 비롯한 새 각료들에게 임명장을 주었다. 이어 전 국무위원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집현실에서 확대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김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변화와 개혁, 세계화에 초점을 맞춰 시대적 소명에 충실하며 역사적 평가를 두려워하는 내각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김 대통령은 회의가 끝나자 청와대 본관앞 계단에서 새 각료들과 환한 표정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이석채 정보통신부 장관은 청와대 일정을 끝내고 오전 10시께 정보통신부 청사에 도착했다. 이계철 정통부차관(한국통신 사장 역임) 등 간부들의 영접을 받은 이 장관은 곧장 22층 장관실로 올라가 박성득기획관리실장(정통부차관 역임. 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 정홍식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차관. 데이콤부회장 역임)으로부터 간단한 업무브리핑을 받았다.


이 장관은 11시 강당에서 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취임식을 갖고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정통부 새 수장으로 등장한 이 석채 장관.

그는 해박한 지식과 치밀한 논리를 갖춘 최고의 엘리트 정통경제관료 출신이다. 여기에 주인형 기질을 갖춘 관료였다. 경북 성주 출신인 그는 어려서부터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리더십과 보스기질이 있어 일찍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서울대 상대 학생회장을 지냈고 수석으로 졸업했다.


1969년 행정고시 7회로 공직에 입문, 경제기획원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고시 동기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동기 4명이 청와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경제수석을 역임했다. 문민정부에서 한이헌 전 청와대 경제수석(15대국회의원. 기술보증기금이사장 역임. 현 한국디지털미디어고교장)과 이 장관이, 국민의 정부에서 강봉균 현 민주당 의원(정통부 장관 역임), 이기호 전 노동부 장관 등이 경제수석으로 일했다.


학구열이 강한 이 장관은 공무원 시절 미보스톤대에 유학,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업무처리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경제기획원 사무관시절부터 그가 기안한 서류는 중간에 한 자의 첨삭없이 그대로 장관에게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 후 정책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과장 시절 뛰어난 기획력과 브리핑 능력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대통령 비서실 경제비서관을 지내며 '장관급 과장'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인 1989년 대통령비서실 사회간접자본투자기획단 부단장을 1년여 맡았다. 청와대에서 경제비서관으로 근무하며 5,6공의 경제정책 수립에 깊이 관여했다. 명쾌하고 논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는 거침없이 추진한 소신파였다.


그와 각별한 사이인 한이헌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이 장관의 특장(特長)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우리가 갖지 못한 몇 가지 특출한 장점이 있다. 우선 그는 아는 것이 많다. 동서고금을 넘나든다. 달변에다 치밀한 논리까지 구비했다. 누구한테도 논리에 밀리지 않는다. 그는 청렴하다. 부정한 돈을 절대 먹지 않는다. 정통부 장관시절 PCS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았다고 해 기소됐으나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를 아는 사람은 그가 돈을 받았다고 믿지 않았다. 의리(義理)를 중시해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변하지 않는다. 지인들의 상가(喪家)에 가면 소주잔을 기울이는 이석채를 항상 볼 수 있다.”  이런 연유로 그를 따르는 후배 공직자들이 많다고 한다.


92년 4월 국가 예산을 총괄하는 경제기획원 예산실장으로 임명됐다.

이 시절, 그는 예산관련 법령을 고쳐 재정개혁을 주도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많이 했다고 한다. 청와대를 비롯해 정치권의 예산편성과 관련한 외압이나 청탁을 일체 배제했다. 상대가 누구든 부당한 예산편성 요구에는 이를 물리쳤다. 그러다 보니 사방에 미운턱이 박혔다. 그래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 무렵, 그는 예산편성을 놓고 정치권과 수없이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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