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려면 먼저 버려라.”
1995년 12월 21일 오전 11시.
정보통신부 대회의실에서 이석채 장관의 취임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직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단장에 오른 이 장관은 취임사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이 장관의 취임사에 귀를 기울이던 직원들은 이내 깜짝 놀랐다. 이장관의 취임사는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파격적이었다. 과거 장관들과는 영 딴판이었다.
이 장관은 정통부에서 미리 준비했던 취임사를 읽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이 직접 메모한 내용을 꺼내 취임사로 대신했다. 이 장관이 강조한 핵심은 ‘변화’였다. 경제부처로 거듭 나라는 주문이었다.
이 장관은 “정보통신정책도 이제는 전체 거시경제의 테두리 안에서 수립해야 한다”면서 “ 정보통신부가 이제는 집행부서에서 정책부서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막힘이 없었다.
그는“ 한국경제가 일류 경제가 되려면 많은 통신기업들이 생겨나고 성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종 행정 규제를 완화해 나가겠다”며 “정보화는 세계적인 추세로 국내 통신시장의 개방 확대와 통신산업의 국제화를 적극 추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의 이런 발언은 소극적이고 배타적인 업무스타일에서 벗어나라는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 것이었다.
개각 발표일 인 12월20일 오후 경제기획원 차관실로 취임사를 준비해 이 장관을 방문했던 정통부 서영길 공보관(TU미디어사장 역임. 현 세계경영연구원 창조경영연구소장)의 기억.
“이 장관은 큰 그림을 그리고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대단했습니다. 개각발표 후 저와 박승규 총무과장(한국인터넷진흥원장 역임. 현 정보통신기능대학장 )이 취임식과 관련해 경제기획원 차관실로 이 장관을 방문했습니다. 취임사는 공보관실 업무여서 준비해 간 취임사를 이 장관에게 드렸더니 내용을 쭉 읽어 보더니 ‘내가 따로 생각한 게 있다’면서 취임사를 따로 정리하셨습니다. 내심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과거 장관들은 부내 사정이나 정책의 균형을 생각해 내부에서 만든 취임사를 그대로 읽었거던요. 나중에 정통부 산하 전기관 직원들에게 보내는 회보에는 이 장관께서 하신 말씀에다 처음 정통부에서 만든 취임사를 가필해 내려 보냈습니다. ”
이 장관은 취임식이 끝나자 상견례를 겸해 출입기자들과도 만났다.
그는 기자들에게 “정보통신정책은 국민을 상대하는 것이므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정보통신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다짐했다.
어떤 일이건 지나고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지라도 사고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시 정통부가 이 경우에 속했다.
이 장관의 증언.
“문민정부가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개편한 것은 미래에 대비해 제도나 관행을 바꾸라는 주문이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정통부는 정책부서로서 아직 준비가 덜 돼 있었습니다. 통신업체 관리에 치중했지 정보화시대를 맞아 실제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직원들도 정통부를 경제부처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누에고치처럼 둘러싸여 교육도 자기들끼리 받았습니다. 그래서 과장급 이상은 무조건 경제공부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경제관련 서적을 사 주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는 행정직외에 재경직도 뽑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정통부가 국가경제 전반에 미치는 시각을 가질 경우 정보통신정책의 질과 내용이 더 알찰 것이라는 것이 이 장관의 생각이었다.
이 장관은 직원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경제마인드’를 갖도록 강조했다.
이 장관은 월례조회에서도 “정통부는 본격적인 경제부처 기능을 강화하고 거듭 나야 한다”는 점을 당부했다.
이 장관은 정통경제관료 출신답게 폭넓은 시각에서 정보통신정책에 접근했다고 한다.
경제관료로서 그의 정책에 대한 접근 시각과 방식은 당시 정통부 직원들에게는 충격이었다. 기존 정책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는 접근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장관의 말.
“직원들에게 공급측면만 보지 말고 수요측면을 보라고 강조했습니다. 수요가 생겨야 정보통신산업이 발전하는 것 아닙니까. 수요를 발생시키는 일도 정책입니다.”
이런 정책접근이 나중에 정통부가 ICT를 기반으로 한국경제성장을 주도하는 미래부처로 자리 매김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이 장관은 내부 인사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행정적 사무관 일색에서 벗어나 외부에서 인력을 충원했다. 그는 승진하는 직원은 체신공무원이 아닌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교육을 받도록 했다. 아울러 가능한 해외에 많은 인력을 내 보내고자 했다.
이 장관의 증언.
“세계로 눈을 돌리라고 강조했어요. 우리식이나 우리들 눈만으로는 세계 정상에 설 수 없지 않습니까.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도 있잖아요. ”
이 장관은 취임과 동시에 정통부를 정책부서로 격상시키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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