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면 각 부처의 안테나는 청와대로 쏠린다.
개각 때문이다.
1995년 12월 15일 오후.
윤여준 청와대 대변인(환경부장관. 16대국회의원 역임. 현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이 기자실로 내려왔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홍구 국무총리(현 중앙일보 고문)를 경질하고 후임 총리에 이수성 서울대 총장(사진.새마을운동중앙 회장 역임)을 내정했습니다”
김 대통령은 발표에 앞서 이 수성 서울대총장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함께 하면서 총리직을 제안했으나 이 총장은 총리직을 고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듭된 김 대통령의 설득에 15일 오전 총리직을 수락했다.
이 총리내정자도 기자들에게 “김대통령으로부터 제의를 받고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나 하나 희생해 국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수락했다”고 밝혔다.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인 국무총리를 놓고 고사한 것도 퍽 드문일이었다. 장관 자리에도 목을 매 개각철이면 청와대 전화를 기다리는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국회는 18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국무총리동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그 결과 재석 246명 중 찬선 206표로 가결됐다. 청와대는 곧장 이 총리와 협의해 개각을 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니 이런 계획은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 사건 공판이 이날 열림에 따라 연기됐다.
12월 20일 오전.
김 대통령은 조각(組閣)수준의 대폭적인 개각을 단행했다. 부총리와 장관 등 22명 가운데 절반인 11명을 교체했다. 경상현 정보통신부 장관(현 KAIST겸직교수)을 경질하고 후임에 이석채 재정경제원 차관(대통령 경제수석 역임.현 KT회장)을 기용했다. 이와 함께 청와대 비서실도 개편했다. 비서실장에 김광일 전 의원을 기용하고 한이헌 경제수석(15대국회의원. 기술신용보증기금이사장 역임. 현 한국디지털미디어고교장)도 바꾸었다. 경제수석에는 구본영 과기처 차관(과기처 장관 역임. 작고)을 임명했다.
정통부 장관 교체의 막전막후를 알아보자.
그는 개각 발표 하루 전 장관 집무실에서 경질을 통보받았다고 했다. 이미 개각에 앞서 장관들은 청와대에 일괄사표를 제출해 놓은 터였다. 한승수 비서실장(국무총리 역임. 현 김앤장 고문)이 장관실로 전화를 해 왔다.
당시 대화 내용을 재현해 보자.
“경 장관입니다”
“한 실장입니다. 대통령께서 그동안 수고 많으셨다는 말씀을 경 장관께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고맙다는 말씀도 함께 하셨습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경 장관의 회고.
“개각 며칠 전 국무 총리가 경질됐습니다. 개각 철이면 장관은 언제나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초대 정통부 장관으로 1년 여 일했고 큰 과오없이 물러나게 돼 퍽 다행이었습니다”
초대 정통부 장관으로 임명돼 1년여를 재임한 그는 20일 오후 1시30분 정통부 회의실에서 이임식을 갖고 간부들의 환송박수를 받으며 정통부를 떠났다. 당시 정통부 내부에서는 신규통신사업자 선정업무를 총괄해 온 경장관이 유임되기를 기대했다고 한다.
과학자로 ICT강국 건설에 헌신한 경 장관은 퇴임 후 가족과 함께 동해안에서 일주일 가량 쉬었다가 한국전산원(현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초빙연구위원으로 일했다. 이어 고려대(석좌교수)와 KAIST에서 후학들을 지도했다.. 현재는 KAIST에서 ICT인재 양성에 열정을 쏟고 있다.
학교에서 그의 호칭은 다양했다. 어떤 사람은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경력을 들어 “장관”이라고 했다. 일부 교수나 학생들은 “교수”라고 불렀다. 그는 어떤 이름으로 부르건 별로 개의치 않았다. 후학들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는 “김재익 박사(대통령 경제수석 역임. 작고)를 만난 것이 한국 정보통신 혁명의 거대한 물결에 몸을 맡기는 기회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며 인연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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