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60>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0. 11. 30. 15:46

본문




“ 한 수석. 이게 무신 일이고. 아니 통신사업자를 또 뽑기로 결정한다는 게 말이 되는기가. 정보통신부가 발표한 한 신규 통신사업자 선정 기준과 관련해 한 수석은 그 내용을 보고 받았다면서?.”


1995년 12월 18일.

정보통신부가 신규 통신사업자 허가신청 요령을 발표하고 나흘이 지난 월요일 아침 7시경.

한이헌 청와대경제수석(15대 국회의원.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역임. 현 한국디지털미디어고교장)이 출근하자마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책상 위의 전화벨이 “따르릉” 울렸다.


김영삼 대통령의 전화였다.

“예 한 수석입니다”

수화기를 들자 김 대통령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소 흥분된 어조였다.

“도대체 뭐가 우째된 일이고. 국무총리한테 전화해도 잘 모르고... ”


김 대통령은 일요일자 조간 J신문의 사설 내용을 언급하며 신규통신사업자 선정기준에 대해 역정을 냈다. 대통령이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서 아침 일찍 이런 전화를 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한 수석이 출근하기전 김 대통령은 여기 저기 전화해 사실을 확인하려 한 듯 했다. 이미 한바탕 난리를 치른 뒤였다.

“각하, 통신사업자는 정통부가 마련한 선정 기준에 따라 그곳에서 공정하게 선정하면 될 일입니다. 사업자 선정에 각하나 경제수석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 며칠 전에 요약본을 각하께 올렸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무슨 국가 정책을 또뽑기로 결정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가”

“각하, 거듭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일은 청와대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쨌건 정통부가 선정기준에 따라 가장 유능한 기업을 사업자로 선정할 것입니다. 그 일은 정통부에 맡기면 된다고 봅니다. 동점(同點)이 나오면 당연히 추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점이 나올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김 대통령이 한마디를 덧붙이며 전화를 “찰칵”끊었다.

“참 경제수석도 문제야”


한이헌.

행시 7회로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을 거쳐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시절 김대통령의 ‘경제가정 교사’역할을 하며 김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문민정부 출범 후 공정거래위원장과 경제기획원 차관 등을 거치며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이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일하면서 한 번도 김 대통령한테 질책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한 수석이 이날 김대통령한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제수석도 문제’라는 꾸지람을 들었다고 기억했다.


한 수석은 곧바로 경상현 정통부 장관(현 KAIST 겸직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사업자 선정에서 동점이 나올 확률이 있습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

한 수석은 본의 아니게 대통령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었다. 그는 기분이 영 찜찜했다고 한다.

“혹시 대통령께서 물으시면 동점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고 하십시다. 사태를 좀 지켜보기로 하십시다”


그 무렵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업무에 관해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한 수석의 증언.

“처음 청와대에 들어오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넘칩니다. 자칫하면 시행착오를 겪기 쉽습니다. 그래서 정부 부처의 역할과 청와대 수석 역할에 대해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정책은 부처 장관이 책임지고 청와대는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거나 대통령의 관심사를 챙기는 역할로 규정했습니다. ”


그는 신규 통신사업자 선정과 관련해서도 정통부보다 내용을 더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싶어 따져 묻지도 않았다고 했다.


청와대의 업무처리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경제수석이 대통령에게 대면(對面)보고를 하지 않고 요약본을 만들어 대통령부속실로 넘겼다고 한다. 대통령이 이를 본 후 관심사항이나 지시할 내용이 있으면 추가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별다른 지시가 없으면 그대로 각 부처에서 시행했다고 한다. 산규 통신사업자 선정요령도 김 대통령이 읽어 본 후 서명해 내려보냈을 것이라고 한 수석은 회고했다.


경 장관이나 한 수석은 추첨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일요일자 조간 J신문의 사설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두 사람의 당시 이야기를 들어보자.


경 장관은 분당 자택에서 일요일 아침에 배달된 조간 J신문의 사설을 읽었다. 그는 사설 논조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김대통령이 화를 내고 나중에 문제가 될 줄은 예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선 청와대 경제수석실과 사전에 충분히 내용을 협의해 발표했고 그런 기준에 대해 청와대도 찬성했던 것이다.

경 장관은 신문 사설을 꼼꼼히 읽어본 후 “유력지 논설위원이 거두절미하고 일부만 가지고 이런식으로 사설을 쓰도 되나”’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경 장관의 말.

“추첨방식과 관련해서는 정통부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했습니다. 경우의 수를 놓고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한가를 고민해 결정했지요. 통신사업자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내부에서도 수 차례 회의를 했습니다. 신문사설은 이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런 추첨방식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했어요.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지요.”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