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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138>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1. 9. 2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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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5월20일.


제1차 한미 국제VAN(부가가치통신망)회담이 서울 체신부 14층 회의실에서 22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개막됐다. 국제VAN서비스개방은 한미통신회담에서 큰 쟁점중의 하나였다. 미국측은 첫 회담때부터 초지일관 국제VAN시장 조기개방을 끈질기게 요구해 왔다.



회담을 앞두고 정부가 한국측 대표단에 내린 훈령은 간단명료했다. 현행 법령과 제도안에서 수용가능한 사항은 받아 들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측의 국제VAN협상 조기타결 의지를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봄이 오면 계곡 얼음이 녹듯 양측의 국제VAN협상 기류도 차츰 변화가 일고 있었다.



한국측에서는 이인표 통신개방연구단장(정통부 통신정책지원국장, SK텔레콤 고문 역임)을 수석대표로 김창곤 통신협력과장(정통부차관 역임. 현 LG유플러스 고문) 구영보 정보통신업무과장(우정사업본부장, 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장 역임, 현 SK텔레콤 고문), 외무부 통상1과 홍지인 사무관(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부장), 체신부에서 노영규 통신협력과 사무관(현 방통위 기획조정실장), 김명룡 정보통신업무과 사무관(현 우정사업본부장), 자문위원으로 체신부장관 자문관인 성극제 박사(현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교수)와 통신개발연구원 최병일 박사(현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교수) 등 8명이 참석했다.


미국측에서는 수석대표인 낸시 애담스 미 무역대표부(USTR) 아.태담당부대표와 상무성 관게자 등 7명이 참석했다.


양측은 한국이 미국측에 미리 제시한 약정안(案)을 중심으로 국제VAN서비스개시를 위한 협상을 벌였으나 서로 이견을 좁히는데는 실패했다.


한국측은 협상의제로 국제VAN문제만 논의하고 현행 법 테두리안에서 서비스제공을 허용한다는 기본입장아래 서비스 범위, 사업자 등록제, 사업자간 운용협정에 대한 정부승인 등을 다루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대해 미국측은 국제VAN사업에 대한 외국인투자제한(현행 50%이내) 폐지와 등록, 신고 등에 대한 정부 규제 완화 문제를 주장해 서로 입장차이만 확인하는데 그쳤다.


한국측은 초지일관 국제VN약정은 기존 법령제도안에서 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고수했다.


국제VAN서비스는 국제전용회선을 빌려 국제간에 DB(정보검색).DP(정보처리),전자사서함.MHS(메시지처리서비스)등 축적전송서비스, CRS(컴퓨터항공예약).EDI(거래정보교환)등 처리전송 등의 사업을 할 수 있어 미국측 최대 관심사였다.


입장을 좁히지 못한 한미양측은 6월에 회담을 다시 열기로 하고 1차 회담을 끝냈다.

한국측은 미국측 요구를 반영한 수정안을 마련해 6월 회담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2차 한미간 국제VAN회담은 그해 6월17일부터 20일까지 미국 워싱턴 DC 미국 무역대표부(USTR)회의실에서 열렸다.


2차 회담에는 한국측에서 이인표 통신개방연구단장을 수석대표로, 교체수석대표로 이종순 주미 통신협력관(정통부 국제협력국장, 아태전기통신협의체 사무총장 역임, 작고), 외무부 박상기 통상2과장(현 주제네바대표부 대사), 체신부 김창곤 통신협력과장, 박정열 정보통신업무과장(현 특허청 정보기획국장) , 자문위원으로 체신부 장관 자문관인 성극제 박사와 한국통신과 데이콤 실무진 등 8명이 대표단으로 참석했다.


미국측에서는 낸시 애담스 미 USTR 아태담당부대표를 수석대표로 한 상무성 관계자 등 8명이 참석했다.


2차 회담에서 한국측은 국제VAN시장개방시기와 범위 등을 놓고 막판까지 고뇌에 고뇌를 거듭했다.

국제VAN서비스 개방문제는 한국측이 현재 50% 이내로 제한돼 있는 외국인투자를 오는 94년 1월까지 전면 개방하겠다는 입장인데 반해 미국측은 조기개방을 주장해 합의하는데 난항을 겪었다.


양측은 한국측 수정안을 놓고 밀고 당기던 진통 끝에 국제VAN(부가가치통신망)서비스분야에서 타결점을 찾았다.


한미양측은 국제 VAN개방 협상에서 미국측의 요구를 한국측이 들어주는 대신 완전개방은 한국측 주장대로 1994년까지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입장은 한국측이 첫 회담때부터 막판까지 고수해 이를 관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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