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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152>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1. 11. 1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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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3월말.


서울 광화문 정보통신부 장관실. 미국워싱턴에서 한통의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를 든 이석채 장관(사진. 현 KT회장)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아니 갑자기 그런 요구를 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회의 중단하고 돌아오세요.”


수화기속 너머는 정보통신부 강상훈 정보통신협력국장((청와대정보통신비서관, 정보통신연구진흥원장 앤씨소프트 감사 역임)이었다. 그는 한미통신회의에 한국측 수석대표로 미국 위싱턴 DC 미 무역대표부(USTR)회의실에서 회의중이었다. 강 국장은 미국측의 요구 내용을 보고하면서 이 장관에게 “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미국측은 합의사항 이행 점검외에 추가로 기존 협정을 개정하자고 요구했다. 이 장관은 미국측의 무례한 요구에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미간 통신협의 기상도가 시계(視界) 제로로 접어 드는 순간이었다. 한미간 통신회의는 그해 3월26일부터 4월2일까지 미국 워싱턴 DC 미 무역대표부(USTR)회의실에서 열렸다.


한국측은 강상훈 정보통신협력국장을 수석대표로, 미국측에서는 크리스티나 런드 미USTR 부대표보가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미국측은 회의에서 기존 합의사항 이해점검이외에 추가로 크게 두가지를 요구했다. 요구 사항은 △그해 6월로 예정된 신규통신사업자 허가계획과 관련, 미국 통신장비체들이 한국업체와 동등한 조건으로 신규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보장해 줄 것 △ 지난 92년 체결된 한미통신협정을 개정, 신규 사항들을 포함해 이를 명문화할 것 등이었다.


강상훈 국장은 이에 대해 “ 이번 협상이 정부조달시장 상호개방등에 관한 협정 이행사항을 점검하기 위한 자리이므로 양국 통신협정 개정문제는 협의대상이 되지 못한다”며 미국측 요구를 거부했다.


당초 통신회의 일정은 2일간이었다. 하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기간을 5일간 더 연장했다. 양측은 회의기간 내내 타결점을 모색했으나 한국측 반대에 부딪쳐 접점을 찾지 못하고 회의를 종료했다. 다만 기존 통신협정 이행에 관한 사항을 명확히 하는 수준에서 합의문을 작성하고 추가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다시 논의키로 합의했다.

 

그해 4월3일.


미 USTR은 연례 88통상법 1377조 통신협정 이행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측은 한국정부가 △미국 기업에 과도한 형식승인 요구 △영업비밀 보호 미흡 등을 들면서 이동통신시장도 전면 개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미국측은 그해 7월1일까지 통신협정 이행 및 개정 문제를 지켜본 후 한국의 통신협정 이행여부에 대해 재판정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미국측이 한국에 대한 전방위 압력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미국측의 일방적인 발표에 한국측은 크게 반발했다.

이석채 정보통신부장관은 그해 4월24일 미lUSTR대표에게 미국측 조치에 항의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 장관은 사전에 통상전문가인 김석한 변호사(현 미 워싱턴 애킨검프 법률회사 시니어 파트너) 등의 자문을 구했다. 미국의 보복조치를 걸어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한다는 역보복수단도 강구해 놓았다


이 장관의 회고.
“정부안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당시 통신장비는 반도체나 철강 등에 비하면 수출액이 얼마안됐습니다. 한미간 무역분쟁이 발생하면 다른 수출에 엄청난 타결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였어요. 주미한국대사관에서 더 아우성이었어요. 박건우 주미대사(외무부차관. 경희사어버대총장 역임. 작고)가 구본영 청와대경제수석(과학기술처 장관 역임. 작고)에게 우려 편지까지 보냈어요.”


이 장관의 계속된 증언.

“미 대사관을 통해 ‘왜 미국이 시장규모가 얼마 안되는 통신분야를 가지고 시비를 거느냐’고 알아 봤어요. 그랬더니 한국시장의 60%를 주면 가만히 있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국가 통신정책이 있는데 시장의 얼마를 달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건 미래를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이 장관은 항의서한에서 “미국이 한국의 통신협정 이행여부에 대해 7월1일 재판정키로 한 것은 일방적 결정이며 지난 4월2일 한미양국 합의를 위반하는 것이므로 수용할 수 없다”면서 “ 미국측이 일방적으로 제재조치를 취하면 한국도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강경 입장을 전달했다.


이와 관련한 뒷이야기. 하나.

이 장관의 강경입장에 대해 바세프스키 대표서리는 사석(私席)에서 “이 장관이 박필수 전 상공장관(외국어대 총장 역임. 작고)의 전철을 밟거나 아니면 정치적 야심을 갖고 미국에 싸움을 거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 장관은 한미통신마찰로 노태우 정부시절 경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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