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89일만의 최시중 전방송통신위원장의 공식 외출은 검찰 출두였다. MB정권 최고 실세의 몰락이다.
4월25일 오전10시 40분. 추적 추적 내리는 봄비 같지 않은 굵은 빗줄기 속에 검은 우산을 쓴 그의 모습은 처연했다. 비록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까지 편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된 게 역대 정권 실세들은 정권말기가 되면 줄줄이 검찰에 불려 가는가. 그는 1937년생이다. 우리 나이로 76살. 노년에 검찰 출두하는 그의 심중은 만감이 교차할 게다.
그는 MB의 멘토로 방통대군으로 불렸다. 대군(大君)은 이조시대 임금의 적자(嫡子)에 대한 호칭이었다.
최시중 전위원장의 권력 크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MB형님 이상득 의원은 영일대군이었다. 이 정부에서 언론이 대군으로 칭하는 이는 딱 두 명이었다.
최시중의 금품수수 혐의는 검찰이 밝혀 낼 질이다. 검찰은 사전 영장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검찰이 혐의 입증에 자신이 있다는 중거다. 죄 있는자 댓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이게 비리종착역이 아닌 다른 출발역이 된다면 MB 정권은 레익덤이 앞당겨 질 수밖에 없다. 그의 검찰출두는 권력무상의 교본이다.
그는 이 정부들어 3년10개월간 권한이 막강한 방통위원장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지난 1월27일 그가 데리고 온 정용욱 전정책보좌관 비리의혹과 친이계의원에 대한 돈봉투 전달 폭로로 불명예 퇴진했다.
그는 재임시절 "뒷모습이 아름다운 언론계 선배로 남고 싶다“고 입버릇처람 말했다.
그의 희망은 비눗방울처럼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는 방통위원장 시절 정통부 페지론에 공감했지만 독임제 부처 부활에는 앞장 서지 않았다. ICT경쟁력이 추락하고 방통위에 '통신이 없다'는 냉소적인 말이 많았지만 이도 외면했다. 그가 지휘한 방통위는 부처 평가에서 꼴찌를 차지했다. 그는 MB멘토로서는 정권창출의 공헌자였지만 정부 조직의 수장으로서는 낙제점이었다. 사람은 떠난 후 그의 가치를 평가받는 법이다.
MB멘토인 그에 대한 ICT인들의 기대는 무망(無望)한 일이었다. 여야 구분없이 정보통신부 같은 독임제 조직 부활을 정책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아무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방통위는 MB나 그만의 조직이 아니다. 국가발전을 위한 정부 조직이다. 합의제 조직으로서 잘못이 확인됐다면 바로 잡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MB나 최전위원장은 그런 개편을 외면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자신들의 오만과 독선으로 '정보통신 강국 한국'의 위상은 안개처럼 사라졌다. 그의 무색무취한 리더십은 방통위를 무기력한 조직으로 만들었다. 정치권의 독입제 부처 공론화 거론에 지경부나 행안부, 교과부, 문화부 등이 조직적으로 차기 정부 조직개편에 대비하는 것과는 비교됐다.
최 전위원장은 퇴임시 "저로 인해 방통위 직원들의 자긍심에 상처를 줬다"면서 "참담한 심경"이라고 했다. 참담한 것은 그가 아닌 방통위와 국민이다. 방통위 전 수장이 금품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그는 과거 모 방통위 국장이 금품수수설에 휘말리자 서둘러 검찰수사를 의뢰한적이 있었다.
최 전위원장은 출두하면서 우산을 들었다. 법의 저울앞에 선 최시중의 우산은 누가 될 수 있을까.
청와대, 이상득 의원인가. 그는 언제까지 웃을 수 있을까. 화무는 십일홍인가. 최 전위원장 말년은 봄비속에 지는 낙화신세다. 모든 게 인과응보다. 몰락하는 방통대군의 처지는 처량하다. 그는 지금 가장 힘든 운명의 다리위를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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