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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조용필, 아들이 보내준 조용필 콘서트

문화. 관광.게임

by 문성 2013. 6. 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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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조용필이었다.

 

가왕(歌王) 조용필(사진)은 건재했다.

 

그는 세월이 흘러도 중년 여성들의 영원한 오빠였다. 그의 음성은 변함이 없었다. 그 나이에 그런 고음을 내다니 놀라웠다. 노래에 대한 그의 열정도 예전 그대로였다.

 

중년 남성들에게 자존심 팍 상하는 일이지만 아내들의 영원한 오빠로 불리는 조용필을 향해 눈흘길 일이 아니다. 억울하면 조용필처럼 언제나 청춘이도록 중년들도 노력하면 될 일이다. 조용필은 영원한 중년주부들의 오빠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단련하고 있었다. 외모도 40- 50대 처럼 보였다. 염색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머리털도 검었다. 게다가 대머리도 아니다. 그와 동갑중에 대머리도 많고 머리에 서리가 내린 이도 많다. 그는 짱짱하고 멀쩡했다. 세상에 노력없이 얻는 건 없다. 그도 젊음과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5월의 마지막날인 31일 저녁 8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조용필의 콘서트 ‘헬로’

에 다녀왔다.

 

그를 만나는 건 10년만이다. 2003년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 공연에 아내와 간 적이 있다. 당시도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내가 앉은 좌석 좌우 앞뒤에서 열광팬, 특히 중년 여인들이 일어서서 노래하고 춤추는 바람에 나는 반 쯤 정신이 나갔다. 그런 자리가 처음인 탓이다. 화가 치밀어 아내에게 이런 공연을 앞으로 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열광팬들은 조용필을 향해 '오빠'를 연호하며 난리였다.

 

콘서트에 간 것은 큰 아이가 어버이달을 맞아 미리 조용필 티켓을 예약했기 때문이다. 조용필 팬인 아내를 위해서다. 과거 추억에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들의 효성을 외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왕 갈일 즐겁게 가기로 했다. 아내와 집에서 이른 간식을 먹고 5시반 경 집을 나섰다. 비번으로 쉬던 둘째 아이가 집을 나서는 아내에게 5만원을 주었다. 큰 아이는 티켓을, 둘째 아니는 용돈을 준 것이다. 기분이 좋다. 아들 키운 보람이 바로 이런 것인지 모르겠다.  

 

올림픽도로는 주말을 앞두고 있어 평일보다 막혔다. 가다 서다를 반복해 도착한 올림픽공원 입구는 차량들로 붐볐다. 차를 돌려 동문으로 들어갔다. 입장료는 선불로 4000원이었다. 운영요원의 안내를 받아 역도경기장 앞에 차를 세웠다. 시계를 보니 7시반이었다.

 

걸어서 체조경기장에 도착하니 입구에 수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기념품과 CD를 판매하고 있다.

 

줄을 서서 입장했다. 대부분 중년들이었다. 여성들이 다수였고 남자는 많지 않았다. 모녀나 혹은 친구들로 보였다. 부부가 같이 온 사람은 간혹 보였다. 공통점은 모두 기대감에 차 있었다는 점이다. 조용필을 만난다는 설레임이었다. 

 

체조경기장안 화장실은 만원이었다. 남녀 화장실에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줄이 길게 이어졌다. 여성 화장실은 줄이 더 길었다.

 

8시가 조금 지나 조용필의 콘서트는 시작됐다. 건축한지 오래돼 의자가 불편했다.

무대에 오른 가왕 조용필이 등장하자 1만여 관객들은 “오빠”를 외쳤다. 그는 “노래하고 춤추고 소리 지르고 손뼉도 치고 놀자”고 말했다. 

 

실내는 순식간에 노래방으로 변했다. 조용필과 관객이 일심동체가 됐다.

 

그는 “10년 만에 앨범을 내면서 타이틀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고민했다. 여러분에게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헬로’를 택했다. 하지만 기자들 중 타이틀 제목을 ‘헬로’로 정한 이유를 아무도 묻지 않아 서운했다. 여러분에게 ‘헬로’했더니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헬로’와 ‘단발머리’ ‘친구여’‘돌아와요 부산항’‘큐’ ‘못 찿겠다 꾀꼬리’ ‘미지의 세계’‘창밖의 여자’‘고추 잠자리’를 불렀다. 아는 노래는 관객들과 합창을 했다. 장내는 야광봉으로 불꽃이 핀 듯 했다.

 

‘바운스’ 무대에 앞서 인천신흥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바운스’를 부르는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 속 초등학생들은 “조용필 형님 사랑해요”를 외쳤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이라고 했다.

 

조용필은 “내 기사가 나오면 괄호 치고 63이 꼭 있더라. 어떤 곳은 하나를 더 보태 64로 나온다. 잘 모르는 사람은 65이냐고 말한다. 그렇게 나이 먹고 할 수 있냐고 하는데 내 생각에 음악은 쉬면 못한다. 계속 연습한다. 2~3시간은 자신있다"고 말했다.

 

이숫자는 그의 나이다. 우리나이로 회갑을 휠씬 넘긴 나이다. 그런 그에게 초등학생들이 형님이라고 불렀다.조용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가 일찍 결혼했다면 그만한 손자를 봤을지도 모른다.

 

조용필은 “밴드 멤버들도 나를 걱정해 ‘형 괜찮겠느냐’고 묻는다. 내가 ”뭐가 문젠데“라고 하면 ”그게 저..“라고 한다. 하지만 하지만 자꾸 단련하고 운동하고 연습하면 된다. 목소리 밝기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고 말했다.

 

그가 가왕으로, 그리고 영원한 오빠로 불리는 것도 그의 이런 노력의 결과다. 흔히 최고가 되기 위한 피나는 노력보다는 연륜을 앞세우는 이가 적지 않다. 하지만 조용필은 오직 실력으로 가왕을 지키고 있다. 그런 노력이 조용필이 세대를 넘나들며 인기를 얻는 비결이다.

 

그는 10시 15분까지 별도의 사회자없이 그리고 우정출연이나 다른 가수 없이 혼자 노래를 불렀다. 대단한 체력이며 열정이다. 물도 무대에 서서 마셨다.

 

그는 공식 콘서트가 끝난 후 관객들이 퇴장하지 않고 ‘앵콜’을 연호하자 다시 나와 ‘여행을 떠나요’를 비롯해 모두 3곡을 더 불렀다. 공연이 끝나도 관객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도 조용필은 여전히 '오빠’였다.

 

조용필은 6월1,2일 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를 가진 뒤 뒤 대전, 의정부, 진주, 대구 등지로 이어진다. 

 

아이들 덕분에 아내와 함께 다녀온 조용필 콘서트였다. 즐겁고 기분좋았다. 아내는 다음 콘서트에도 가고 싶다고 했다. 나도 반은 마음이 기울어 있다.  

 

역시 조용필이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나도 모르게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을 흥얼거렸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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