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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 바람을 생각하지 못했구나"

문화. 관광.게임

by 문성 2013. 9. 20.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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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 없는 세월의 내달림.

정말 빠르다. "촌음을 아끼라"는 성현의 말씀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꼭 1년 전, 오늘처럼 추석 보름달이 휘영청 세상을 환하게 비추던 날.

큰 아이 제안으로 가족이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러 갔다. 흥미진진했다.

 

영화 한 편 보고 대보름달 아래 가족이 걸은 게 어제 같은데 벌써 1년이 흘렀다.  

 

 

올해도 추석 차례를 모신 후 오후들어 큰 아이가 제안했다.

“저녁에 영화나 보러 가시죠”

 

아내가 좋다고 했다. 아들이 앞장서니 만장일치. 관상(사진)을 보러 가기로 했다. 큰 아이가 스마트폰으로 예약을 했다. 세상살이 말 편해졌다. 과거 같으면 극장 앞에서 줄을 서서 표를 샀다.  

 

오후 7시 10분.

저녁을 먹고 아내와 두 아들과 걸어서 극장에 도착했다.

입장하는데 스마트폰을 보여주니 무사통과다. 디지털시대 실감났다. 그나 저나 아날로그 세대인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언제까자 두 아들과 극장에 갈 수 있으려나 싶다. 

 

관상(觀相)의 사전적 해석은 생김새를 보고 그 사람의 운명이나 재수 따위를 판단함. 또는 생김새를 보아 판단하는 그 사람의 운명이나 재수 따위를 이르는 말이다.

 

관상학은 중국 혼란기인 춘추전국시대 인물을 가려 쓰기 위해 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때 중국 유학을 갔다온 이들에 의해 들어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활개를 쳤다고 한다

 

삼성그룹 고 이병철 회장은 관상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직원을 면접할 때 관상을 중요시했다. 그는 관상이 나쁜 사람을 채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좋아한 관상은 단정한 얼굴이었다. 단정한 상은 정직하고 배신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런 연유인지 삼성에서 배신한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관상은 우리와 친숙한 단어다.

관상이 개봉 10일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점도 영화 선택에 한몫을 했다.

 

우리는 그 사람을 평가하는데 몇가지 수단이 있다. 관상이외에도 수상(相)과 족상(足相) 등이다.

 

영화 관상의 줄거리는 이렇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천재 관상가 내경. 처남 ‘팽헌’, 아들 ‘진형’과 산속에 칩거하고 있었다. 어느날 관상 보는 기생 ‘연홍’의 제안으로 한양으로 향하고, 연홍의 기방에서 사람들의 관상을 봐주는 일을 한다. 용한 관상쟁이로 한양 바닥에 소문이 돌던 무렵, ‘내경’은 ‘김종서’로부터 사헌부를 도와 인재를 등용하라는 명을 받아 궁으로 들어간다. 그는 ‘수양대군’이 역모를 꾀하고 있음을 알고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한다.

 

결국 수양대군은 김종서을 죽인 후 단종을 밀어내고 왕위에 오른다. 내경은 아들을 잃고 바닷가에 은둔해 삶을 마감한다. 그곳을 찾아온 한명회에게 목이 잘린 관상이라고 말한다. 결국 한명회는 광해군 때 폐비 윤씨건에 연루돼 무덤에서 꺼내 부관침시 당한다.

 

 

관상 스토리는 광해처럼 탄탄하지 않아 다소 실망했다. 구성이 느슨해 긴박감과 반전이 없었다. 

시나리오가 좋아야 배우들의 열연이 빛나는 법이다. 수양대군과 김종서, 한명회라는 익히 아는 역사적 사실에 내경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등장했다면 극적인 반전이나 스토리전개가 더 빠르고 치밀해야 했다.

 

관상에서 몇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파도를 만드는 것은 바람이다. 사람들은 바람은 보지 못하고 파도만 본다”

“이나라가 이씨 나라냐. 김씨 나라냐”

“권력이란 그런 것이지요. 내가 죽거나 상대가 죽는 것이요”

“각각의 파도들만 생각했지 정작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생각하지 못하였구나”

 

영화 '관상'이 주는 메시지는 두 가지다.

눈앞의 파도만 볼 게 아니라 거대한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보라는 것이다. 그것을 관상에서 내경은 바람이라고 칭한 것이다. 권력을 가지려는 인사들이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흔히 말하는 판세를 읽는 시각이다. 내경은 관상은 잘 봤지만 당시 판세를 정확히 읽지 못했다. 그래서 아들이 수양대군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수양대군이 이렇게 말했다. "저 양반은 자기 아들이 요절하는 것을 알기나 했을까"    

 

또 하나 관상이 좋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옛말에 관상보다 심상(相)이 좋아야 한다고 했다. 곧 마음의 현상이 관상으로 나타난다. 내경이 바람을 보지 못하고 파도만 본다고 한 것도 얼굴만 볼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 즉 심상을 보라는 의미다. 

 

그나 저나 다음 가족영화 관람은 언제쯤 할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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