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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292> 정통부 전성시대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3. 12. 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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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훈 장관이 감탄할 정도로 정통부 공무원들의 역량이 뛰어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유능한 행시 출신 사무관들이 앞 다퉈 정통부로 몰린 까닭이다.

1994년 말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한 이후다. 김영삼 대통령은 당시 `정보화를 국정지표`로 제시했다. 이후 정통부는 매년 행정고시 출신 사무관들이 가장 선호하는 부처로 급부상했다.

 

1998년 봄 정통부 총무과장이었던 김동수 과장(사진.정통부 차관 역임. 현 법무법인 광장 고문)의 말.

“김대중 정부 출범 무렵이 가장 절정기라고 봅니다. 미래부서로 정통부가 자리매김을 하면서 행정고시 사무관들이 대거 몰렸습니다. 이들의 성적은 상위권이었어요.”

 

정통부 첫 외부 인사는 정홍식 차관(한국정보통신사업자 이사장 역임)이다.

그는 국무총리실을 거쳐 권력의 심장부이자 최고 엘리트들의 집합소인 청와대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을 지낸 후 체신부 통신정책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 정통부 발족이후 정보통신정책실장으로 일하면서 국가정보화를 총괄한 산증인이다.

그는 광폭의 대인 관계를 바탕으로 정통부를 일류부처로 탈바꿈하는 일에 앞장섰다

 

초대 경상현 정통부 장관에 이어 이석채 장관(현 KT 회장)은 ‘정통부가 집행부처에서 정책부처로 변해야 한다.’면서 혁신의 바람을 몰고 왔다.

이 장관은 정통부에 소극적이고 배타적인 업무스타일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을 요구했다.

이 장관의 회고.

“정통부가 출범한 것은 미래에 대비해 제도나 관행을 바꾸라는 주문입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정통부를 경제부처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월례조회에서 정통부는 경제부처라는 인식을 강화하고 거듭 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 장관은 정통부에 정보화기획실을 설치해 외부 인력을 대거 수혈했다. 초대 실장에는 안병엽 재정경제원 국민생활국장(정통부 장관. 17대 국회의원 역임. 현 KAIST 석좌교수)을 1급으로 데려왔다. 과장급도 다른 부처에서 영입했다. 안 실장에 이어 변재일 실장(정통부 차관 현 민주통합당 정책위 의장) 등이 정통부로 왔다.

 

이 장관의 후임으로 일 잘하기로 소문난 강봉균 장관(재정경제부 장관, 16·17·18대 국회의원 역임, 현 건전재정포럼 대표)이 취임했다. 그는 ‘일류부처’ ‘일등 부처’를 강조했다. 두 사람은 엘리트 경제관료 출신이었다.

 

강 장관은 “정통부가 일류부처가 되면 한국 정보화 역시 세계 일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장관은 정보통신정책과 거시경제를 연결시켰다. 정보통신산업 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거시경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해당 국장에게 질문했다. 경제 전체를 보라는 주문이었다.

 

정통부 출범 후 처음 정통부로 온 사무관은 행정고시 36회다.

1995년 고시합격자 115명 가운데 20명의 사무관이 정통부로 왔다. 이태희 현 방통위 통신정책기확과장과 최영진 현 정책총괄과장 등이다.

 

가장 우수한 인력이 몰린 것은 1997년 봄이다.

그해 4월 정통부로 배정받은 행시 출신 사무관은 18명이다. 이 중 37회 행시에서 2등으로 합격한 류제명 현 방통위 규제개혁법무담당관과 38회 행시에서 역시 2등으로 합격한 유법민 현 지식경제부 자원개발전략과장, 39회에서 2등으로 합격한 이맹주 사무관(현 강남대 행정학과 교수)이 포함됐다. 이맹주 사무관은 정통부 근무 중 국비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아 귀국 후 복귀했다가 학교로 이직했다.

 

39회 출신 사무관들은 13명인데 이들도 모두 성적이 상위권에 들었다고 한다. 2등부터 5등까지 모두 정통부에 들어 왔다.

 

39회 수습사무관 중에 화제의 인물은 송경희 현 방통위 인터넷정책과장이었다.

송 과장은 4남매가 모두 고시에 합격해 ‘고시집안’으로 주목을 받았다. 한 사람도 배출하기 어려운 고시에 4남매가 합격했으니 화제가 안되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송 과장은 39회에서 5등으로 합격했다.

 

송 과장은 4남2녀 중 넷째인데 위로 오빠 셋 중 두 사람은 사법고시에 한 사람은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큰 오빠는 대학교수, 둘째는 변호사, 셋째 오빠는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낸 3선 경력의 송영길 현 인천광역시장이다.

 

당시 행정고시 사무관은 1,2,3 희망부서를 제출하면 성적순으로 부서 배정을 받았다. 하지만 정통부 지망 사무관들은 성적 우수자들이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우수 사무관들이 정통부로 몰린 것은 미래부서로 국가변화를 주도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송경희 과장의 말.

“당시 희망부서는 부서별로 인원편성표가 나오면 성적순으로 배정을 했습니다. 당시 정통부는 새롭게 출범한 미래부서로 시대변화를 주도했습니다. 국가를 혁신시키는 부처라는 점이 지원한 이유입니다.”

 

이후 행시 40회에서도 24명이 그리고 41회는 18명이 정통부를 지원했다.

 

김동수 총무과장의 회고.

“문민정부 출범 무렵이 가장 절정기 이었습니다. 지원자들이 성적 상원권자였습니다.”

정통부 전성시대가 열렸다. 그러다가 차츰 지원자가 줄었다. 승진이 늦다는 점이었다. 인재들이 몰리다보니 승진이 적체될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이유는 일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정통부에서 ‘ICT 강국 코리아’ 건설에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사람이 미래를 만든다는 사실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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