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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장하는 데이콤 - 아듀

문화. 관광.게임

by 문성 2009. 11. 2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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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콤의 출발은 장대했다.
데이콤은 82년 4월 28일 원대한 구상아래 닻을 올렸다.

데이콤은 이에 앞서 3월 29일 법인 설립등기를 마쳤다. 그리고 한 달여 후인 이날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 국제회의장에서 창립행사를 가졌다. 이날 정.관.산.연 등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데이콤의 발전을 기원했다.

데이콤은 이후 정보통신 업무 허가와 공중통신사업자. 행정전산망 전담 업체로 지정받아 야심차게 사업을 추진했다.  86년에는 국내 최초로 PC통신(천리안)서비스를 시작해 데이터 기반의 통신시장을 활짝 꽃피웠다.  90년대 초까지 ‘음성통신은 한국통신, 데이터통신은 데이콤‘이라는 구도속에 전성기를 누렸다.

 

국제전화 사업을 앞두고 91년 11월 회사 이름을 데이콤으로 바꾸었다. 그해 12월 3일부터 식별번호를 002로 하는 국제전화사업을 시작했다.

 

95년에 저궤도 위성통신(클로벌스타)사업에 참여했고 96년 시외전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신규 통신사업에도 관심을 가져 한솔PCS컨소시엄에 참여해 PCS사업권도 따냈다. 97년에는 시내전화 사업권을 획득했다.

 

데이콤은 그러다가 김대중 정부시절인 99년 반도체 빅딜을 계기로 LG그룹의 계열사로 넘어갔다. 반도체빅딜에 대해서는 아직도 뒷말이 많다. 하니닉스는 반도체빅딜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LG는 99년 11월 동양그룹이 갖고 있던 데이콤 지분 18.56%를 전량 매입해 데이콤 지분을 50%이상 확보하고,   2000년 1월 데이콤과 데이콤 5개 자회사 등 6개사를 계열사로 공식 편입시켰다
.
 이 과정에서 우역곡절이 있었으나 정부의 사업 승인을 얻었다.

 

데이콤은 이후 경영난에 시달려 대대적인 경영 개선과 구조 조정을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롤 2002년에는 흑자를 기록했다.  데이콤이 남긴 족적은 많다.  인터넷데이터베이스(IDC)와 웹하드서비스, 무선인터넷전화 등도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였다.

 

데이콤은 2006년 9월 22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사명을 LG데이콤(사진)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내년 1월 5일 해산등기를 하면 출범 27년 9개월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LG데이콤이 LG텔레콤으로 합병하기 때문이다.
 

KT보다 4개월 늦게 탄생한 국내 2대 통신사인 데이콤의 여로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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