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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191>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2. 5. 8.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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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6월16일.

 

양승택 총장은 일간신문에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교수초빙 광고를 냈다.

 

학부는 정보공학부와 통신공학부,기초공학부, 산업경영학부 등 4개 학부로 산업체나 현장 경력자는 우대하기로 했다. 응모자격은 해당분야 박사학위 소지자로 지원서와 자기소개서, 성적증명서 석.박사 학위증명서, 추천서 경력증명서 등이었다. 그해 7월12일까지 대학설립추진단에서 접수를 마감했다.

 

이들에 대한 심사는 7월 하순경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서울사무소에서 진행했다. 양승택 총장이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서울대 이병기교수(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현 서울대 교수)와 KAIST 김길창교수 등이 분야별 책임자로 심사를 했다.

 

정보공학부와 통신공학부 심사를 담당했던 이병기 교수의 회고.

“설립추진단에서 사전에 만든 기준에 따라 심사를 했습니다. 저는 정보공학부와 통신공학부 책임자였고 심사위원이 7-8명 됐습니다. 꼬박 이틀간 심사를 했는데 유능한 인재들이 많았습니다.”

 

설립추진단은 심사결과 모두 27명을 교수롤 채용했다. 이중 13명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출신이고 나머지는 다른 기관 출신이었다.

양승택 총장은 교수들에 대한 대우는 국내 최고수준으로 책정했다. 양총장은 정보통신대학원대학을 세계 일류 학교로 발전시키려면 우수 교수를 확보해야 하고 그러자면 국내 대학 수준보다는 높게 대우해야 한다며 이를 관철시켰다.

 

양승택 총장의 회고록 증언.

“대학을 처음부터 시작하다보니 모두가 신입 교원이었다. 그 중에 교수 경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5명에 불과했다. 교수법 교육을 일주일간 합숙으로 실시키로 했다.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허운나 교수(16대 국회의원. ICU총장 역임. 현 채드웍 송도국제학교 고문)에게 4천만원에 용역을 맡겼다. 충남 천안에 있는 상록회관에서 일주일간 합숙 교육을 실시했다. (회고록 ‘끝없는 일신’에서).

 

허운나 교수는 서울대를 나와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에서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한양대에 교육공학과를 국내 처음 개설했다. 16대국회 의원시절 세계IT국회의원연맹을 구성해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허운나 전 총장의 말.

“교육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제자와 팀을 구성해 교수활동을 효과적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교수방법과 문제해결 방법을 비롯해 교육목표, 방향, 교육과정 설계 등 교육 전반에 관한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창의적인 교수법과 자기주도의 학습 방법, 토론 방법 등을 설계했습니다.”

허운나 전 총장은 천안 상록회관에서 새 교수진과 합숙을 하며 이들에게 교수법을 강의하고 밤에는 토론을 했다.

 

허운나 전 총장의 회고.

“제가 2004년 4월 3대 총장으로 부임했더니 당시 합숙했던 교수들이 과거 일을 이야기하더군요. ”

그해 7월16일 교육부는 학교법인 한국정보통신학원 설립을 허가했다.

설립추진단은 그해 7월31일 학교인가서류를 교육부에 제출했다. 시설 및 교원 및 재산확보명세서를 비롯해 대학헌장, 학칙 등을 첨부했다.

 

강봉균 장관을 비롯한 정통부 간부들이 총 동원돼 교육부에 대학설립허가를 독촉했다.

 

강봉균 장관의 증언.

“경제기획원에 있을 때 KDI정책대학원 설립을 관철시킨 경험이 있습니다. 안병영 교육부 장관(교육부총리 역임. 현 연세대명예교수)에 이어 이명현 장관(교육선진화운동본부 이사장 역임) 등에기 과거 사례를 들어 빨리 허가해 달라고 부탁했지요. ”

 

박성득 정통부 차관의 회고.

“당시 교육부 장관은 차관을 거쳐 결재가 올라오면 곧장 처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차관은 장관이 오케이하면 결재하겠다는 식으로 서로 미루며 허가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당시 교육부 이용원 차관(진주교대 총장 역임)과 계속 협의를 했습니다.”

 

정통부 김창곤 당시 심의관(정통부차관 역임. 현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장)의 말.

“실무자들은 원칙에 어긋난다며 위에서 방침을 정해 주기 전에는 자신들은 결재를 올릴 수 없다고 했어요. 실무자들은 원칙론을 내세우기 마련이지만 아무튼 애를 먹었습니다.”

 

정통부 김인식 당시 기술기획과장(한국정보인증 사장 역임)의 말.

“실무선에서는 처리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것입니다. 그동안 정통부에서 열린 대학설립추진위원회에 교육부에서 위원으로 참석해 놓고도 딴소리를 하는데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당 과장은 고시 1년선배인데 얼마나 완고한지 정말 고생 많이했어요.”

 

이 과정에서 당초 대학설립계획서에서 두 가지가 변경됐다. 첫째는 당초 특별법으로 추진했던 대학설립이 사립학교법으로 바뀌었다. 또 대학 명칭이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로 변경됐다.

 

그해 8월.

교육부 대학설립심사위원회에서 대학원대학 실사를 나왔다. 양승택 총장은 현금 100억원을 은행에 예치해 놓고 실사를 받았다.

실사 반원중 한사람이 학교 경계선에 벽돌담을 설치해 놓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양승택 총장이 상황을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실사반장은 서울대 기계과 노승탁교수(서울대 명예교수)였다.

그는 양총장의 후배였다. 양총장은 그를 만나 사정을 설명했다.

 

노 교수가 시원스럽게 말했다.

“선배님 걱정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의 말대로 실사는 잘 끝났다. 일단 한 고비를 넘기자 마음이 불이 커진 듯 미래가 밝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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