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뒤집기 국회가 앞으로 뭘 쇄신할까. 기대 자체가 무리다.
새무리당의 쇄신 공약은 초장부터 ‘허무개그’가 됐다.
위급할 때는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큰소리 치더니 막상 국회에 들어와서는 내몰라라 하는 국회의원들의 이율배반적인 행태가 11일 국회본회의장에서 그대로 되풀이됐다. 일반인들도 이들처럼 앞에 한 말을 뒤집지는 않는다.
머리 좋고 입으로 사는 사람들이니 입으로는 그럴듯하게 부결 당위를 말하지만 그것은 자신만의 ‘허무개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더 심하게 말해 국민을 졸(卒)로 보지 않는 한 그런 짓을 할 수 없다.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정치인을 국민은 언제까지 보고 살아야 하나.
만약 힘없는 서민이 불법으로 3억원을 받아 챙겼다는 혐의를 받는다면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단돈 십만원만 받아도 당장 감옥행이다.
당사자인 정두언 의원은 물타기 수사라며 억울하다지만 이 역시 법에서 가려야 할 일이다. 어느 비리정치인치고 처음부터 자신이 잘못했다고 고백하는 이는 없었다.
19대 국회는 처음부터 여야가 쇄신 경쟁을 하는 바람에 뭔가 좀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했다.
시작부터 국회 공약이 물거품이 됐으니 정치권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는 다 틀렸다. 정두언 의원 체포 동의안 부결은 결과적으로 제식구 감싸기라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사태는 함량미달의 새누리당 지도부와 노회한 민주통합당 박지원의 책략, 여기에 양심불량의 정치인들이 만든 합작품이다.
여야가 서로 상대를 향해 삿대질을 하지만 둘 다 책임이다.
이날 본회의(사진. 뉴시스)에는 271명이 참석했다. 새누리당 136명, 민주통합당 117명, 통합진보당 12명이었다. 정두언 의원 표결에 찬성 74표, 반대 156표, 기권 31표였다. 박주선 의원은 찬성 148표, 반대 93표, 기권 22표, 무효 8표였다. 여야에서 반란표가 생겼다.
누가 어떤 표를 행사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없다. 그것은 국회 무기명 비밀투표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여야가 책임 떠넘기기를 해도 누가 진실인지 모른다.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이 박지원 원내대표를 보호하기 위한 고의적으로 반대표를 던졌다고 주장한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여권 무죄 야권 유죄로 이는 각본”이라고 공격했다. 이런 시비를 없애려면 무기명 비밀투표 방식을 바꿔야 한다. 법개정이 필요하다.
이번 일로 새누리당은 도덕성에 치명타를 맞았다. 당장 지도부 리더십이 도마위에 올랐다. 박근혜 전위원장도 난감한 처지에 몰렸다. 친박계 일색이 불러온 재앙이다. 정몽준. 이재오 등 친박과 각을 세우는 비박측이 친박주도 정국에 순순히 따라올리 없다. 대선후보 룰을 놓고도 그동안 얼마나 대립했는가.이런 판에 지도부가 통합의 정교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우직스럽게 밀어 붙이기만 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친박계로 정치권에 쓴소리를 많이 해 별명이 '미스터 쓴소리'다. 그의 소신발언은 불통과 대립, 갈등의 정치 현실에 실망하는 국민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여당 원내대표는 전략이 필요하다. 만약 이견이 있다면 상대를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했다. 이번 사태는 그의 정치력이 학자틀을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줬다. 사전에 내용을 의원들에게 소상히 알리고 정지작업을 치밀하게 했더라고 막을 수 있는 사태였다. 새누리당 지도부의 전략부재가 불러온 재앙이다.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 대표는 산전 수전 가 겪었다. 장관과 청와대비서실장, 총리 출신이다. 정국의 흐름을 꿰뚫어 본다. 이에 비해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나 이한구 원내대표는 아마츄어다. 만약 이해찬 대표나 박지원 원내대표라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정치적 수가 민주통합당이 몇 수가 높다. 이제 박지원 원내대표를 검찰이 불러 수사하기는 더 어렵게 됐다.
새누리당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그동안 쇄신파라며 주목받던 남경필, 김용태 의원이나 친박계 윤상현 의원의 처신은 공약에 대한 배신이다. 남 의원은 “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체포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은 국회가 피의사실을 인정해 주는 꼴”이라며 “부결해 달라”고 발언했다. 김의원은 여야 의원들을 향해 “여러분 중 상당수가 현재 검찰의 선거법 위반 수사를 받고 있는데 앞으로도 회기 중 체포동의안을 보내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느냐”고 물었다. 선거법 위반 국회의원이 82명이다. 이들을 상대로 한 위협이 먹혀 든 것이다.이들이 아무리 논리를 앞세워 말한들 국민 눈높이와는 다른 그들만의 발언이다.
이들은 왜 특권포기를 포기하지 못했을까. 결국 자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보는 국민은 억장이 무너진다. 총선 때 공약해 놓고 첫국회에서 이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이들이 쇄신의 주체가 될 수 있나. 국회의원 4년은 보장된 만큼 제멋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래놓고 12월 대선에서 쇄신을 외치며 국민에게 다시 표를 달라고 할 수 있는가. 입이 부끄럽지도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