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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220>-아시아 CDMA 개척단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2. 9. 2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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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4개국에도 CDMA 개척단을 파견합시다.”

 

1997년 10월 중순. 중남미 3개국 CDMA 개척단 활동을 평가한 정보통신부는 아시아국가에도 CDMA 개척단을 파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민.관.연 공동 개척단이 중남미 지역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외환금융 위기를 극복하는 데 정보통신 역할이 절대 필요했다. 그해 10월부터 신규 PCS사업자들이 CDMA 상용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시작한 것도 한 요인이었다.

 

강봉균 정통부 장관(재경부 장관. 국회 16.17.18대 의원 역임)의 회고.

“그 무렵, 정부는 외환금융 위기극복에 전력투구했어요. 정통부는 정보통신산업의 해외진출로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고 판단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시장개척단을 아시아 지역에. 파견키로 한 것은 이 일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

 

개척단 파견 대상국은 필린핀과 인도네시아. 오후, 싱가포르 4개국으로 정했다.

이들 4개국은 김영삼 대통령이 국빈방문한 나라로 이미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협력방안을 논의한 상태였다. 특히 필리핀에서 김 대통령은 라모스 대통령과 경호사령부에서 함께 조깅을 하고 농구를 하면서 대내외에 양국간 우의를 과시하기도 했다

 

개척단장은 중남미 지역을 다녀온 정홍식 정보통신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통신기술협회 이사장)이 맡았다.

 

정홍식 단장의 증언.

“당시 한국은 외환 금융위기로 매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시장개척단 일행은 CDMA가 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개척단 구성 실무작업은 권병욱 정통부 국제협력국 사무관(현 방송통신위원회 편성평가정책과장)이 담당했다.

 

권 사무관의 말.“당시 저는 국제협력국에서 중남미 담당이었어요. 그런데 다시 아시아 개척단 계획안을 만들라고 해 제가 했습니다. 그해 8월에 개척단 구성 작업을 한 적이 있어 저한테 일을 맡긴 것입니다.”

 

아시아 개척단에는 부품업체 대표를 포함시켰다. 이는 통신사업자와 부품업체의 해외동반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정통부에서는 중남미 지역에 갔던 황의환 부가통신 과장(현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부회장)이 빠지고 대신 신용섭 정통부 기술기준과장(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들어갔다.

 

신 과장은 CDMA개발과정에 핵심역할을 한 담당자였다. 그는 93년 11월 기술기준과장으로 발령난 후 6년간 CDMA업무만 담당했다.

 

신 과장의 회고.

“CDMA 업무를 맡은 지 6년 후인 1999년 정보보호과장으로 발령이 나서야 비로소 CDMA 업무에서 손을 땔 수 있었습니다. 저처럼 6년 간 한 분야 업무를 담당한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에서 한기철 이동통신계통연구부장(현 인터넷연구부문 책임연구원)과 정인명 연구실장(현 한국통신사업자협회 방송시험인증단장), 한국통신(현 KT)에서는 오성묵 부장과 홍영도 부장, 문기운 차장이, SK텔레콤에서는 표문수 전무(sk텔레콤 사장 역임. 현 고문)과 마중수 이사(현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신세기통신에서는 이성준 팀장, 삼성전자에서는 홍순호 이사(현 부사장)와 우형래 부장, 김용식 과장, 오용섭 고장, LG정보통신에서는 연철흠 연구실장과 문형렬 과장, 현대전자에서는 장병준 전무와 박노성 이사, 박찬종 이사, 이기승 부장, 나창영 차장이 참여했다. 부품업체 대표로 서두인칩 유영옥 사장과 에이스테크놀러지 오정근 부장과 박미란 과장이 개척단에 가세했다.

 

개척단은 CDMA 포럼과 정부 관련부처 고위인사 면담, 통신업체 방문, 한국 업체의 방문국 통신시장 진출 지원 등으로 일정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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