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이 파도처럼 넘실대는 세상에 이런 삶이 있다.
지난 3월 5일 퇴임한 김능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사진)이다.
그런 이가 있기에 세상이 아름답다. 그의 삶을 보면 냉골같던 가슴이 훈훈해 진다
그는 외모조차 이웃집 아저씨처럼 수더분하다. 고위 공직을 지낸 이들한테 느끼는 목과 어깨의 힘, 기름이 번질거리는 살찐 얼굴, 잘 손질한 머리, 고급 승용차와 운전기사, 가진자들의 특허인 거만함이 그한테는 없다.
지금은 아내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이른바 ‘편의점 아저씨’다.
그를 보면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말이 떠오른다.
요즘처럼 껍데기 들이 판치는 공직사회에서 그는 '청백리' 또는 공직사회의 '알곡'이라 할 것이다.
그는 고위공직자들의 4대 필수과정이라는 부동산투기와 병역기피, 위장전입, 탈세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는 제17회 사시에 합격해 육군 법무관을 거쳐 전주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고법 판사, 서울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대법운 수석재판연구관, 울산지원장, 대법관, 18대 선거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지난 3월 5일 33년의 공직 생활을 마감했다.
공직에 있으면서 검소한 생활로 '청백리'라는 별칭을 얻었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초대 총리로 거론됐다. 하지만 그는 "대법관 출신이 행정부의 다른 공직을 맡는게 적절치 않다"며 고사했다.
이게 쉬운 일인가. 새정부에서 한 자리 하고 싶어 전화를 기다리는 함량미달의 공직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후보자중에서 각종 비리의혹이 제기되도 나몰라라 버티는 얼굴 두터운 인사들이 볼 때 그는 별종이거나 아니면 고지식한 옹고집에 속할 것이다.
만약 그가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로 발탁됐다면 국민의 절대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출범 초기에 총리 재지명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장관 후보자로 제발이 저린 부적격자는 스스로 사퇴했을지도 모른다.
청백리 총리인 그가 형식적이긴 해도 부동산투기, 병역기피, 위장전입, 탈세 장관을 추천할 가능성은 낮다. 그는 퇴임식날 고급승용차가 아닌 소나타를 직접 운전해 청사를 떠났다. 장관이나 차관만 해도 떠날 때 고급승용차를 기관에서 제공하는데 그는 이도 거절했다. 그 흔한 공로패도 만들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의 재산은 9억여원. 대법관중에서 두 번 째 꼴찌.
그가 6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한 편의점. 25㎡ 남짓한 매장 내부 계산대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짙은 청색의 등산 점퍼와 펑퍼짐한 갈색 바지, 연보라색 목도리 차림으로 아내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했다. 손님을 맞이해 계산을 하고 짐을 옮겼다(사진). 그런 그를 누가 대법관에다 선관위원장을 지낸 고위층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워낙 손님을 능란하게 대해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원래 주말 한 타임을 내가 봐주기로 했는데, 오늘은 사정상 아르바이트 직원과 근무를 바꿨다"며 "오전 7시부터 나왔는데 오후 3시가 교대시간이다. 손님이 없을 땐 도올 김용옥 선생의 책을 읽고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 옆 채소가게에 앉아있던 김 전 위원장의 부인은 "예전부터 가게를 하고 싶었는데 바깥양반이 판사 주변에서 이해관계가 얽히는 일이 있으면 안된다고 늘 손사래를 쳤다"며 "평생 집에서 밥만 한 나도 그나마 채소 보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아 퇴임을 앞둔 지난해 편의점과 채소가게를 열게 됐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 얼마나 당당한가. 공직자들이 본받아야 할 청백리의 참모습이다. 탐욕이 넘치는 이 세상에 그는 한줄기 솔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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