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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248>-TDX-1A 4개지역 개통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3. 3. 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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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7월20일.

 

임기가 만료된 백영학 소장 후임에 경상현 박사(정통부 장관 역임. 현 KAIST 겸직교수)가 취임했다. 그는 한국전기통신연구소 선임연구부장과 TDX개발단장으로 일하다 한국전기통신공사 부사장을 거쳐 친정인 연구소 소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해 8월29일.

한국전자통신연구소는 교환기 생산4사로 지정된 대우통신과 금성반도체, 동양정밀, 삼성반도체통신 등과 TX-1개발 기본협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에 따라 연구소는 그해 12월말까지 TDX-1시험생산에 필요한 시스템 설계기술과 하드웨어 기술,소프트웨어 기술 등 원천설계 기술과 국설계 기술과 시험기술, 유지보수기술, 제조기술을 4사에 전수했다.

 

양승택 단장의 회고.

“막상 기술전수를 시작하니 업체의 생산과 설계 수준이 말이 아니었다. 설계된 기판 필름까지도 연구소에서 만들어 보내 줘야 할 정도였다. 업체 연구원 교육은 대전에서 실시했는데 이들은 기술전수에 최선을 다했다.”

 

체신부는 생산4사별로 추첨을 통해 상용시험지역을 배정했다. 삼성은 경기 가평, 금성은 경기 전곡, 대우는 경북 고령, 동양은 전북 무주에 자사 제품을 설치해 시스템과 연동시험을 시작했다.

그해 9월3일 2차 실용기 인증시험이 끝났다. 그런데 70 여개 항목에서 불합격을 받았다.

 

양승택 단장의 증언.

“결과를 ‘그대로 발표하느냐’고 연구원들이 네게 물었다. 나는 ‘실용시험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해야 좋은 상품제품이 나올수 있으니 그대로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이로 인해 한바탕 후폭풍이 불었다. 불합격을 그냥 넘길 서정욱 단장이 아니었다.

 

서 단장은 9월 7일 오후 대전으로 내려와 개발단을 강당에 집합시켜 놓고 이유재 사장의 지시를 전달했다. 서 단장은 “연구원이 태만해 이런 불합격을 받았으니 책임을 통감해 더욱 심기일전하라”면서 “부서장은 현장을 떠날 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해 9월부터 4개월간 교환기 4사가 생산한 제품에 대한 인증시험을 실시했다.

결과는 자동화 기능 등 일부 문제가 발견됐으나 성공이었다. 1986년 1월 한국통신의 인수시험이 끝나고 그해 3월 시험생산한 9600 회선 용량의 교환기 2만4000 회선을 가평과 전곡,고령, 무주에 각 6000 회선 씩 설치했다.

 

1986년 3월.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홍성원)실은 전두환 대통령에게 TDX개발 성공 결과를 보고했다.

보고서 내용을 보자.

“최대 연구개발 사업인 TDX를 국내 개발 및 상용화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정부와 기업,연구소가 혼연일체가 돼 성공시킨 쾌거로서 우리나라도 최첨단전자통신기술을 확보하게 돼 외국과의 구매 및 기술협력능력이 대폭 강화됐으며 수입원가 절감 및 수입대체로 연간 최소 4000만달러의 외화절약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향후 2000년까지 28억 달러에 달하는 교환기수요의 상당부문을 국산으로 대체하고 수출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해 3월14일 오전 10시 반.

전북 무주와 경기 가평. 전곡, 경북 고령의 4개 지역에서 동시에 TDX-1A가 개통됐다.

이자헌 체신부 장관(민자당 원내총무 역임. 현 새누리당 고문)은 무주전화국에서 열린 개통식에 참석, “정부가 선진정보화사회를 앞당겨 구현하기 위해 외국에 의존하던 전자교환기를 우리 기술로 개발하는데 성공했다”면서 “이를 계기로 우리가 기술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TDX개발은 한국 통신혁명의 첫 결실이자 세계 10번째 기술쾌거였다. 미지의 세계에 도전한 이들의 열정과 집념은 한국 통신혁명의 꽃을 활찍 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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