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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254>-15대 대통령 김대중 당선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3. 4. 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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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1997년 12월 18일이 왔다.

 

그날은 국민 선택의 날이었다. 숨가뿐 하루였다.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의 여신은 대선 4수(修)에 도전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에게 꽃다발을 안겼다. 국민은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19일 새벽. 경기 일산 김대중 당선자의 집.

 

김 당선자가 자서전에서 증언한 이날 새벽 자택 주변 풍경.

“새벽에 일어났다. 새날이었다. 일산 우리 집 담을 넘어 ‘애국가’‘우리의 소원은 통일’‘ 목표의 눈물’ 등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내 이름을 연호했다. ‘대통령 김대중’ 먼동이 트고 있었다‘”

 

김대중 후보는 유효표 40.3%인 1천32만6275표를 얻어 당선이 확정됐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자유선진당 대표 역임)는 9백93만5728표를 얻어 38만9547표 차이로 석패했다. 3위는 국민회의 이인제 후보(현 통일선진당 대표)였다.

 

선거는 승자독식이다. 이긴 국민회의는 잔칫집이었다. 패자는 한나라당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대선판은 이처럼 비정하고 냉혹한 승부의 세계였다.

 

15대 대통령선거는 3자 구도였다. 여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그리고 한나라당을 탈당한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의 물고 물리는 선거판이었다.

 

잠시 이회창 후보와 김대중 후보, 이인제 후보의 대선출정 과정과 3당의 정보통신분야의 대선 공약을 알아보자.

 

이회창 후보는 그해 3월13일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여당인 신한국당 대표로 취임했다.

그의 이력은 화려했다. 대법원 판사, 중앙선관위원장,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거치면서 원칙에 충실한 대쪽 이미지를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특히 국무총리 시절인 1994년 4월22일 오후 김영삼 대통령과 충돌한 후 사표를 냈다. 이 일은 그에게 전화위복이 됐다. 국민에게 ‘대쪽 총리’라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그해 7월21일 오전 서울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전당대회 2차 결선에서 경쟁자인 이인제 후보를 2300표 차이로 누루고 신한국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신한국당은 그해 9월30일 대구 실내체육관에서 전당대회를 열어 김영삼 대통령이 겸직하던 당총재에 이회창 후보를 선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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