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이찬진 사장은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그는 `한국의 빌 게이츠`로 불렸다. 한국 벤처스타 중의 한 사람이었다. 벤처스타는 곧 부(富)의 상징이었다.
그는 대학 재학 중 `서울대 컴퓨터연구회(SCSC)`에서 활동했다. 1988년 체신부가 공모한 우편번호 자동변환 SW공모전에 대학 후배인 김형집, 우원식 씨와 함께 참가해 대상을 차지했다. 이후 이들과 `한글1.0`을 처음 상용화했다.
이 사장의 회고.
“1998년 4월께 제품을 상용화했어요. 곧바로 서울 종로 세운상가의 러브리SW를 총판으로 지정해 제품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한글1.0을 팔아서 번 5000만원으로 1989년 10월 11일 한컴을 설립했다. 그의 나이 스물 다섯 살이었다. 이후 한컴은 신제품을 출시한 후 승승장구했다. 1991년 매출 10억원을 기록했다. 2년 후인 1993년 매출 100억원을 달성했다. 이때부터 한컴 신화는 시작됐다.
한컴은 1996년 9월 24일 코스닥에 상장했다. 당시 한컴은 `인터넷 3인방` 중의 하나로 불리며 연일 상종가를 기록했다. 주가가 최고 24배까지 치솟는 진기록을 남겼다.
이 사장은 1996년 신한국당 15대 전국구 예비후보 2번으로 발탁됐다. 그해 9월 21일 오전 11시 이 사장은 인기 탤런트 김희애 씨와 서울 여의도 63빌딩 코스모스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현 중앙일보 고문)이 맡았다.
그해 12월 22일 이회창 신한국당 명예총재(감사원장, 국무총리 역임)가 대통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면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했고, 그 뒤를 이어 이찬진 사장이 최연소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 시절이 그에게는 인생의 황금기였다.
그러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다. 한컴은 1998년 들어 단기 부채로 경영난에 시달렸다. 그는 한컴 경영에 전념하기 위해 1998년 5월 4일 의원직 사퇴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했다. 사퇴서는 5월 16일 수리됐다. 6개월여 만의 정치 외도를 청산하고 경영자로 복귀했지만 한컴의 경영은 내리막길을 달렸다. 결과적으로 그는 경영에 허당이었다.
당시 한컴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벤처인 A 씨의 말.
“국내 SW 불법복제가 성행했던 점이 한컴 경영악화의 큰 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방만한 경영도 한몫을 했습니다. 이 사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했지만 그해 5월 13일 1차 부도를 냈어요. 이 사장이 국내 대기업으로 뛰어다니며 투자유치에 적극 나섰지만 모두 외면했어요. 한컴의 미래가치가 낮다고 본 것입니다.”
그해 6월 중순 어느 날. 이찬진 사장과 김재민 사장은 배순훈 정보통신부 장관(현 S&T중공업 회장)을 만났다. 이 사장은 MS의 투자 배경을 배 장관에게 설명했다.
배순훈 장관의 기억.
“두 사람이 장관실로 왔더군요. 이찬진 사장이 `투자를 받지 못하면 부도가 나 구속될 처지였다`고 하더군요. 이 사장에게 `경영을 잘 하지 그게 뭐냐`며 야단을 쳤어요. 그리고 `MS 투자는 잘된 일이다. 이 사장은 능력이 있으니 미국 실리콘벨리로 가서 다시 시작해라. 이 사장은 꼭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이 사장도 부채를 청산하고 미국으로 갈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런 계획은 한글 살리기 운동이 벌어지면서 무산됐어요.”
MS의 한컴 투자로 한글이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반발 국민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튿날인 16일부터 천리안과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4대 PC통신에는 한글 포기를 반대하는 네티즌의 항의 글과 모금운동 동참을 호소하는 글이 넘쳐났다.
그해 6월 18일.
한국에 온 빌 게이츠 MS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63빌딩에서 가진 기회회견에서 “MS의 한컴 투자 계획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튿날인 6월 19일.
한국벤처기업협회(회장 이민화)가 이날 일간신문의 광고를 통해 성명서를 발표했다. 협회는 성명서에서 “한글 포기는 한국인의 자존심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며, 우리나라 전체 SW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기에 국민적 공감을 얻고 그 해결책을 강구키로 했다”고 밝혔다.
협회는 이어 한글 사용자들에게 “한컴을 살리기 위한 범국민 운동으로 `1인당 1만원내기 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이 운동에는 3일만에 1000여명이 동참했다.
협회는 또 정부는 각 기관의 PC에 한글 정품을 구입해 설치하고 SW 불법복제를 근절하는 한편 공정거래 질서 차원에서 MS의 SW 무상배포 등 불공정 거래행위에 단호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촉구했다.
이민화 회장(매디슨 대표이사, 기업호민관 역임, 현 KAIST 교수)의 말.
“협회 부회장들과 사전에 한컴 살리기 운동에 관해 논의했습니다. 조현정(현 비트컴퓨터 회장, 한국SW산업협회장), 변대규(벤처기업협회 부회장 역임, 현 휴맥스 사장), 장흥순(벤처기업협회장, 터보테크 사장 역임, 현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 등인데 다들 좋다고 했습니다.”
그해 6월 2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미국 MS의 한컴 지분참여 계약이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는지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한글 살리기 운동에는 대학생, 공무원 등 각계각층이 적극 동참했다. 나우누리의 `한글 살리기` 서명 란에는 나흘 만에 2000여명이 서명했다. 이런 여론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이현덕의 정보통신부<309>이민화 "한컴인수하겠다" 발표 (0) | 2014.06.10 |
---|---|
이현덕의 정보통신부<308>벤처협회 "한국지키기 운동" (0) | 2014.06.03 |
이현덕의 정보통신부<306>-풍전등화 한국과 컴퓨터 (0) | 2014.04.15 |
이현덕의 정보통신부<305>-적자 우체국 통폐합 (0) | 2014.04.10 |
이현덕의 정보통신부<304>-우정사업 115년만의 첫 흑자 (0) | 2014.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