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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정부 주도의 기업 빅딜은 실패"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4. 8. 2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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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27.

 

구본준 LG반도체 사장(LG전자 부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영동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ADL이 사용한 자료와 판단근거에 공개적인 검증과정을 거칠 것을 요구하고 LG반도체가 입은 물질적, 정신적 피해에 대해 ADL을 제소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구 사장은 현재 진행 중인 소장 작성 등 실무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다음 달 미국 보스턴 ADL 본사를 상대로 불법행위법이나 계약법에 의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설명했다.

 

구 사장은 ADL은 경영주체 선정을 위한 평가는 공정성과 객관성, 전문성을 요구하는 작업인데도 ADL은 이 중 어느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보고서를 냈으므로 귀책사유는 ADL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태수 ADL 한국지사장은 1229일 오전 기자들에게 반도체 통합과 관련해 “ADL이 내놓았던 평가보고서는 공정성과 도덕성, 전문성을 갖춘 것으로 별도의 검증이 필요없다고 말했다. 정 지사장은 “LG반도체로부터 원했던 만큼의 충분한 자료를 건네받지는 않았으나 회의에서의 질의답변 등을 통해 많은 자료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결론을 내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정태수 당시 지사장의 회고.

 

“5대 그룹의 빅딜은 김대중정부가 정권의 사활을 걸고 추진한 일입니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구조조정인데 그런 일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만일 ADL이 그렇게 할 자신과 능력이 없었다면 이 일을 맡지도 않았을 겁니다. 국가경제에 미칠 파급을 감안해 한마디로 목숨 걸고 결론을 내린 일입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일은 평가작업을 하는 기간 내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어느 곳에서도 평가와 관련한 전화 한 통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했어요.”

 

평가보고서 내용을 놓고 언론을 통한 양측의 논쟁이 계속되자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경제부총리 역임, 현 코레이 고문)이 총대를 메고 해결사로 나섰다. 더는 논쟁을 방치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가 회고록 `위기를 쏘다`에서 밝힌 내용이다.

 

한 해가 저무는 1230.

 

이 위원장은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서울 플라자호텔 일식집에서 독대했다. 이 위원장은 구 회장과 사적인 만남이 처음이었다. 이 위원장은 29일 구 회장에게 전화를 해 `한잔 하십시다`며 일정을 잡았다.

 

술이 한 순배 돌자 이 위원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구 회장님,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습니다. 게임을 크게 하세요. 크게 놓고 보시면 얻으실 겁니다.”

 

허허 무슨 말씀입니까.”

 

연초까지는 마음정리를 하셔야지요. 윗분을 한번 만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허허 글쎄요.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의논해 보겠습니다.”

 

이 위원장이 지칭한 윗분은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마음정리를 하라는 말은 반도체를 포기할 각오를 하라는 것이었다.

 

새해를 맞은 199914.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오후 4시 서울 롯데호텔에서 구본무 LG, 정몽헌 현대 회장(작고)과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서강대 총장 역임, 현 숙명학원 이사장,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 양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등 5명이 만나 반도체 빅딜 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그해 16일 청와대 집무실 옆 접견실.

 

김대중 대통령과 구본무 LG 회장이 만났다. 구 회장의 표정은 비장했다. 그가 대통령 면담을 신청해 마련한 자리였다. 배석자는 강봉균 경제수석(정통부 장관, 재정경제부 장관 역임, 현 군산대 석좌교수) 혼자였다. 구 회장이 말문을 열었다.

 

반도체는 선친이 물려주신 사업입니다. 기술력과 재무구조도 우수합니다.”

 

김 대통령은 말이 없었다. 표정도 굳어 있었다. 구 회장은 대통령의 마음을 돌리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모든 걸 내려놓기로 했다.

 

아쉽지만 국가경제를 위해 내어놓겠습니다. 이왕 포기하는 것 지분 100%를 모두 현대에 넘기겠습니다.”

 

김 대통령이 반색했다.

 

큰 결단을 내려줘 고맙습니다. 정부가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 돕겠습니다.”

 

강봉균 경제수석의 증언.

 

구 회장은 이미 정부 결정에 따르기로 결심하고 청와대로 왔어요. 비감한 심경을 토로하면서 정부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어요. 김 대통령이 그를 위로했습니다. 면담 시간은 30분 정도였습니다.”

 

일설에는 김 대통령이 구 회장에게 구 회장 날 좀 도와주소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LG그룹은 이렇게 반도체 사업을 타의에 의해 포기했다. 반도체 빅딜의 구체적인 절차와 가격 협상이 남아 있었지만 빅딜은 이날로 일단락됐다.

 

LG그룹의 고위인사 L씨는 반도체 빅딜과 관련,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며 당시 일에 관해 언급을 극히 자제했다. 이 인사는 사견(私見)을 전제로 반도체 빅딜은 편파적이었다. LG가 반도체 사업을 현대에 넘기게 된 배경에는 현대의 대북사업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반도체 사업을 지키지 못한 구본무 회장은 한동안 상심(傷心)의 날을 보냈다고 한다.

 

정부의 빅딜에 관해 이헌재 당시 금감위원장은 회고록에서 정부 주도의 빅딜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간 거래는 기업에 맡겨야 한다. 정부가 나서면 뒤틀리고 어긋나게 된다면서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착잡하다고 했다.

 

그해 422LG와 현대는 서울 신라호텔에서 협상 타결을 발표했다.

 

현대로 통합한 반도체 사업은 가격 폭락으로 인해 한때 경영난에 빠졌다. 이후 2001년 하이닉스로 사명을 변경했고, 20122SK가 하이닉스를 인수했다. SK는 그해 3월에 사명을 SK하이닉스로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반도체기업의 흥망사에는 이 같은 곡절이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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