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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317>-배순훈 장관의 '대기업 빅딜 발언 파문'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4. 9. 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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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이란 근본적으로 과잉 투자를 해소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자동차는 맞는 얘기지만 생산량의 95%를 수출하는 전자를 포함한 것은 잘 이해할 수 없다.”

 

19981216.

배순훈 정보통신부 장관(사진, S&T중공업 회장)은 이날 오전 730분 전국경제인연합회 20층 경제인클럽에서 열린 전경련 초청 최고경영자 월례조찬회의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이 발언이 화근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배 장관은 이어 기업을 구조조정해서 경쟁력이 생긴다고 하는데 특히 대기업의 신인도·신용을 이렇게 떨어뜨려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대우전자를 오래 경영했다. 세계 시장에 나가서 텔레비전을 남들보다 싸게 만들어서 많이 팔자. 이게 내가 얘기하는 탱크주의라며 대우가 국내 가전 3사 중 꼴찌라고 하지만 국외 수출을 합치면 비슷하다. 그런데 (국제 시장에서 중저가 제품으로 승부를 걸던) 대우가 느닷없이 `월드 베스트`라는 삼성 마크를 붙여 팔 수 있겠는가라고 빅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배 장관의 이 발언은 순식간에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배 장관의 발언 진의가 어디에 있건 역린(逆鱗)을 정면으로 건드린 셈이었다. 현직 장관이란 점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재벌 개혁의 핵심으로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5대 그룹 빅딜에 현직 장관이 반대한 것으로 언론이 일제히 보도한 까닭이다. 배 장관의 `빅딜 반대` 발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권력 누수를 촉발할 수 있었다.

 

당시 5대 그룹 빅딜은 청와대의 강력한 추진 의지와는 달리 순조롭게 굴러가지 않았다.

 

해당 기업들은 정부의 빅딜에 부정적이었다. 삼성자동차는 삼성자동차 연구소 비상대책위원회가 인터넷에 빅딜 반대 홈페이지를 개설해 반대시위를 했다. 반도체 빅딜을 놓고는 LG와 현대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정부 내에서도 인위적인 빅딜에 반대하는 기류가 없지 않았다. 전주범 대우전자 사장은 정부의 빅딜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다 경질됐다.

 

배 장관의 빅딜 발언에 청와대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날 강연과 관련한 배 장관의 증언.

 

그날 조찬강연 내용에는 빅딜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습니다. 참석자 중 누군가가 `대기업 빅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사견을 전제로 `IMF는 기업의 부채를 줄이라고 한 것이다. 대기업 빅딜은 구조조정의 목적이 아니다`고 대답했습니다. IMF는 대기업 빅딜을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는 17일자 초판에 `배 장관 빅딜 반대`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배 장관은 가판 보도를 보고 언론사에 연락해 이날 발언은 빅딜을 절대 반대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 신문은 배 장관의 해명을 기사에 반영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더욱이 이날자 조선일보 만평(漫評)은 사태를 더 꼬이게 했다. 만평은 김대중 대통령이 옥좌에 앉아 있고 다른 대신들이 모두 엎드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유일하게 배 장관이 일어서서 `빅딜 NO`라며 외치는 그림이었다. 제목으로 `예스맨만 있는 줄 알았더니`라고 달았다. 감성을 자극하는 만평이었다.

 

1217일 오후.

 

김대중 대통령은 베트남 국빈방문과 아세안과 한··일 간 9+3 정상회담 등 23일간 베트남 방문을 마치고 서울공항으로 귀국했다. 재계의 시선은 청와대로 쏠렸다.

 

청와대 경제수석실 L비서관의 말.

 

김 대통령이 강력히 추진하는 대기업 빅딜에 현직 장관, 그것도 빅딜 해당기업의 CEO를 지낸 배 장관이 그런 발언을 했으니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게 청와대 분위기였습니다. 자칫하면 김대중정부의 재벌개혁 의지를 훼손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배 장관이 16일 오전 전경련 초청 월례조찬회에서 한 강연내용은 무엇인가. 구조조정과 관련한 배 장관 발언 내용을 보자.

 

장관이 되기 전에 대우에서만 22년 근무했는데, 요즘 빅딜이 돼서 대우전자가 이슈가 되고 있다. 대우전자 직원들이 이메일로 장관 그만두고 대우전자로 돌아오라는 얘기를 많이 올리고 있다(웃음). 관직은 처음인데 기업체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것 같다.

 

기업 구조조정해서 경쟁력이 생긴다고 그러는데 특히 대기업의 신인도·신용을 이렇게 떨어뜨려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대우전자를 오래 경영했다. 세계 시장에 나가서 텔레비전을 남들보다 싸게 만들어서 많이 팔자, 이게 내가 얘기하는 탱크주의다. (중략) 대우가 국내 가전 3사 중 꼴찌라고 하지만 국외 수출을 합치면 비슷하다. 그런데 (국제 시장에서 중저가 제품으로 승부를 걸던) 대우가 느닷없이 `월드 베스트`라는 삼성 마크를 붙여 팔 수 있겠는가.

 

빅딜이란 근본적으로 과잉 투자를 해소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자동차는 맞는 얘기지만, 생산량의 95%를 수출하는 전자를 포함한 것은 잘 이해할 수 없다. 조선은 100% 수출이다. 한때 과잉 생산 능력이 문제가 됐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가 없다. 지금은 기업 신용도가 가장 중요한 시대인데 국제 신인도에 해를 주는 일을 하면 손해다. 비판으로서가 아니라 건설적 의미에서 받아들여 달라.

 

전에 기업에 있을 때는 김우중 회장에게서 전권을 위임받아 모든 일을 신속하게 결정했으나, 장관이 되고부터는 되는 게 없다. 일만 하려고 하면 무슨 협의다, 국회다 해서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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