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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318>-배순훈 장관 "사표를 내라는 겁니까?"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4. 9. 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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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자 배순훈 정통부 장관은 1998년 12월 17일 오후 무거운 표정으로 김중권 대통령비서실장(새천년민주당 대표 역임, 현 변호사)을 만났다. 표정이 심각하기는 김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김 실장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말문을 열었다.

 

배 장관은 조찬강연 내용을 설명한 후 빅딜에 관해 반대한 적이 없다. 다만 기업의 부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진의가 잘못 전해졌다고 해명했다.

 

배 장관의 증언을 토대로 그날 대화를 재구성해 본다.

 

사태가 어렵게 돼 걱정스럽습니다.”

 

사표를 내라는 것입니까.”

 

상황을 좀 더 두고 보시죠. 그러나 일단 사표를 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배 장관은 김 실장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김 실장도 그날 배 장관이 내방으로 와서 사표를 냈다고 확인했다.

 

배 장관의 사표는 곧장 수리됐다.

 

청와대는 18일 배 장관의 경질을 공식 발표했다. 박지원 청와대 대변인(대통령비서실장, 문광부 장관 역임, 현 국회의원)후임은 법 절차에 따라 총리의 제청을 받아 임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대기업 빅딜 파문의 조기진화와 다른 각료들에 경고의 의미로 배 장관의 경질을 결정했다고 한다.

 

탱크주의 장관으로 국민에게 인기가 높았고 김대중 대통령이 파격적으로 발탁했던 대기업 CEO 출신 배 장관은 그렇게 물러났다. 그는 재임 10개월 동안 거침없는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취임 초 경쟁력 없는 기업은 망해야 국가 경쟁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교육 시 기업에서 절대 돈 받지마라. 돈 필요하면 장관에게 말해라. 내가 구해주겠다고 강조했다.

 

배 장관은 초고속통신망 구축에 역점을 두었다. 김 대통령도 초고속통신망 구축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배 장관 그거 왜 깔아야 합니까.”

 

목포 사는 고교 3년생이 서울 강남에 있는 고교의 수업을 받으려면 이걸 깔아야 합니다. 전북 정읍 최 씨 할머니가 손수 가꾼 유기농을 서울 부자에게 직접 팔 수도 있습니다.”

 

배 장관의 증언.

 

초고속통신망 구축사업에 당시 정통부 과장이던 형태근씨(방통위 상임위원 역임, 현 동양대 석좌교수)와 신용섭씨(방통위 상임위원 역임, EBS 사장)가 주말 근무도 마다하지 않고 일했습니다.”

 

당시 정통부는 부처 평가에서도 1위에 올랐다. 특히 만년 적자를 보던 우편사업에 민간 경영기법을 도입해 115년 만에 우정사업을 흑자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배 장관의 말.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기업과 달리 행정부에서는 제대로 추진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처 간 협의다 국회 통과다 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특히 국회와는 늘 갈등 관계였습니다.”

 

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곧장 해외로 떠났다. 모르코에서 쉬면서 사하라사막으로 갔다. 그런데 사막으로 휴대폰이 걸려 왔다. 사막에서 휴대폰이 터지다니 놀라웠다. 전화는 미국 투자기업인 왈리드 앨로마 어소시에이츠 대표인 앨로마라였다.

 

배 장관의 말.

 

이 사람이 `대우전자 인수에 관심이 많다. 우리는 돈밖에 없는 투자자들이고 회사를 인수하면 누군가가 경영을 맡아줘야 하는데 회사를 나스닥에 상장할 테니 당신이 경영을 해달라`는 겁니다. 잘못하다간 오해를 살 것 같아서 구체적인 투자규모와 상장일정 등을 제시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한국 장관 출신이니 이 사업은 한국 국익에 도움이 돼야 하고, 또 내가 대우 출신이니 김우중 회장에게도 도움이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왈리드 앨로마 측은 대우전자에 32억달러를 투자해 2년간 회사를 개편한 뒤 10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해 세계 최대의 가전업체로 키운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배 장관은 이런 조건이라면 국가나 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 장관의 이어지는 증언.

 

연봉도 많이 주겠다는 겁니다. 3억달러를 제시하더군요. 김우중 회장에게 이런 내용을 알렸고 양측은 19997MOU까지 교환했습니다. 이헌재 당시 금감원장(부총리 역임, 현 코레이 고문)이 만나자고 하더니 `형님 해외 매각이 잘되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했어요. 나중에 김 회장이 반대해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배 장관 경질 후 김대중정부는 대기업 빅딜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한 대기업 빅딜은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가 시장에 개입하면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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