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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일기- 집으로 간 행자

암자일기

by 문성 2009. 12. 2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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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 일이란 게 끝이 없다. 해도 해도 일거리다.

그래서 “절 일이란 죽어야 끝이 난다”는 우수갯 소리도 있다.

행자는 절의 모든 일이 다 그의 몫이다. 산사 안팍의 청소부터 시작해 법당에 촛불 켜고 다기 물 올리는 일, 법당의 문을 열고 닫는 일, 부엌 설거지, 신도 안내, 사소한 잔심부름까지 눈만 돌리면 모두 일이다.

 
어릴 적 부터 불교에 관심을 가졌다가 스스로 간절히 원해 출가하는 행자의 경우는 이런 일이 힘들지 않다. 오히려 삶의 희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회 생활을 하고 그것도 사람을 부리는 입장에 있다가 현실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도피성 출가를 한 경우는 이를 극복하기가 어렵고 힘들다.


 이 중년 행자는 후자에 속했다. 그는 사회에서 사업을 해서인지 남을 부리는데 더 익숙한 듯 했다. 출가를 결심한 사람이 자가용과 핸드폰을 가질 이유가 없는데 그는 수시로 가족과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외출도 잦았다. 내가 보기에 그는 여전히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보기에 안타까웠다. 어떤 식으로든 결단을 내리도록 조언을 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한가한 틈을 내 그에게 조용히 충고했다.

 “나이들어 출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크게 발심 해 출가를 해도 스님으로 한 세상 산다는 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진정 출가를 못하면 죽을 것 같지 않으면 다시 사회로 돌아가세요. 지금 사회의 일이 괴롭고 머리 아프다고 절을 도피처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출가보다 더 어려운 것은 출가 후 일입니다. 지금처럼 새벽에 일어나 청소하고 하루 종일 일하는 그런 마음 자세로 사회생활을 한다면 못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절 생활의 반만 사회에서 하면 성공합니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내 말만 듣었다. 

이튼날 그의 모습이 종일 보이지 않았다. 절 식구에게 물어보니 속가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며 나갔다고 했다. 

하루가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2일 째 날 새벽에 그는 예불에 참석했다. 어제 밤 늦게 아니면 새벽에 온 듯했다.

 아침을 먹고 그가 내 방으로 다시 왔다. 그는 표정이 밝았다. 마음의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며칠 집으로 가서 정리할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그래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고 확신했다.  오히려 그렇게 되길 속으로 바랐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당부했다.

“속세로 나가던지, 출가를 하던지 빨리 마음을 정하십시오. 가능하면 가정으로 돌아가세요.”

그는 내 연락처를 물었다. 나는 그의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

 “모든 게 인연입니다.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는 부채살처럼 뻗어오는 아침 햇살을 등뒤로 받으며 발걸음도 가볍게 길상암을 내려갔다.


그와는 그게 마지막이었다. 만나지 못했다. 그는 사회로 돌아갔다. 그가 길상암을 떠나갈 때 그 누구도 내다 보지 않았고, 붙잡지도 않았다. 대문 없는 곳이 절이니 가고 오는 것도 바람처럼 자유스러운 곳이 절의 불문율이다.
나만 마음이 심란해 요사채 앞을 한동안 서성거렸다.
그가 가족들과 지난 날의 고뇌를 보약으로 삼아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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