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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일기-행자

암자일기

by 문성 2009. 12. 2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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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行者). 가는 사람이다. 어디로 가나.
불교에 귀의했다면  구도(求道)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어느 절이든 행자(行者)를 만난다. 행자는 쉽게 말해 인턴 스님이다. 기업에 인턴사원이 있는 것이나 같다.  일종의 수습사원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스님들과는 옷차림도 다르다.

불교에서는 스님이 되기 위해 출가했으나 아직 계(戒)를 받지 못한  사람을 행자라고 말한다.


행자는 아직 정식 스님이 아니다. 예비 수행자다. 
하지만 스님들에게 행자 시절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한다.  "중 노릇 행자 때 다 한다"는 말이 있다.  스승을 모시면서 배우고 익혔던 것이 그 자신이 정식 스님이 돼 살아갈 때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조계종의 경우 행자는 6개월 가량 기본 교육을 받아야 한다.

길상암에서 지낼 때 그곳에서 행자를 몇 명 만났다.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에 빈 구멍이 생긴 듯 했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속세를 떠날 결심을 했을 까.   


 처음 본 행자는 나이가 들어 중년이었다. 그의 이마와 눈 주위에 세월의 흔적인 주름이 선명했다. 그렇다고 나이를 물어 볼 수도 없었다. 더욱이 스님한테 가장 곤란한 질문이 과거 속세의 이력이라는 것이다.  속세에서의 모든 인연을 털어 버린 사람한테 지난 일을 물어 볼 이유는 없다. 

그는 165센티 정도의 키로 성실하고 부지런했다. 말도 별로 없었다. 그는 첫날부터 암자 여기 저기를 비로 쓸고 정리하고 다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일을 찾아 정리했다. 그로 인해 길상암 주위는 세탁한 빨래처럼 항상 깨끗했다. 신도들한테도 인사성이 밝아 싹싹하게 대했다.


그러면서  행자실에서 혼자 목탁을 치며 염불 연습도 했다. 나도 간혹 그의 방에서 목탁소리와 천수경 외는 소리를 들었다.
  절에 가면 스님들이 목탁을 치며 염불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보고 듣기에는 누구나 할 것 같지만 천만의 일이다. 염불에도 고저 장단의 운욜이 있다. 이를 익혀야 듣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준다.

 주지 광해 스님은 이런 모습을 보고 “행자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네”라며 흡족해 했다.


나도 그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보이지 않았다. 공양주 보살에게 물었다.

“행자가 왜 안보이네요”

그는 속세로 돌아갔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사연은 이랬다.  행자의 나이는 45살. 결혼도 하지 않았다. 성격은 내성적이었다. 그 나이까지 홀로 지내다보니 날마다 술을 벗하며 지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홀연히 느낀 바 있어 출가를 결심했다. 그동안 모은 재산을 정리해 법당 문고리를 잡고 절로 들어섰다. 그런 행자앞에  장애물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속칭 말하는 가방끈이 길지 못했다. 스님이 되려고 하니 읽고 외우고 써야 할 게 하나 둘이 아니었다.  각종 불경은 한자가 대부분이다. 이를 해석하려면 배움이 절실했다.  그는 학력의 고개를 넘지 못하고 스스로 절을 떠났다는 것이다. 더욱이 스님들은 천수경부터 금강경 등 외워야 할 게 많다. 그는 그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스님 팔자는 따로 있나보다. 누구나 스님이 되는 게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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