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 이하 생략“.
만해 한용운 선생(사진)이 남긴 대표작 '님의 침묵'이다. 만해는 스님이자 시인이고 독립운동가였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중 한 명으로 기미 독립선언서를 읽었다. 그가 1933년 직접 지어 1944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1년간 머물렀던 서울 성북구 심우장(사진)이 사적으로 지정받았다.
문화재청은 서울시 기념물 제7호인 '만해 한용운 심우장'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12일 밝혔다.
심우장은 '소를 찾는 집'이라는 뜻으로, 소는 불교 수행에서 '잃어버린 나'를 빗댄 말이다.
이 집은 전형적인 근대기 도시 한옥으로, 남향이 아닌 동북향으로 지은 점이 특징이다. 만해가 국권을 빼앗은 조선총독부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햇볕이 덜 드는 방향을 택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만해는 1905년 설악산 백담사에서 정식으로 출가해 한국불교의 개혁을 주장했다. 3·1운동 이후에는 불교청년회 회장에 취임해 정교분리를 요구하고, 항일단체인 신간회 발기인으로도 참여했다.
그는 54세이던 1933년 종로구 안국동 선학원 벽산 스님이 사둔 성북구 땅을 받아 손수 목공 일을 해 집을 세웠다. 이후 심우장은 민족지사와 문인들이 교류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1937년에는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돼 마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일송 김동삼이 순국하자 유해를 모셔와 심우장에서 장례를 치르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이봉창 의사 선서문과 유물’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예고했다.
이봉창 의사와 관련된 유물은 '이봉창 의사 선서문(사진. 아래)', 백범 김구에게 보낸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 3건이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이봉창 의사가 일왕을 처단하고자 하는 결의를 기록한 국한문 혼용의 선서문으로 이봉창 의사의 대표적인 항일투쟁 유물이다. 이 선서문은 1931년 12월 13일에 김구 선생이 이봉창 의사를 안중근 의사의 아우인 안공근(安恭根) 집으로 데려가서 선서식을 거행하고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지정한 사적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지정·등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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