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 소녀는 총명했다. 임금 영조 앞에서 조금도 주눅들지 않았다. 영조는 조선 21대 임금이다. 재위기간이 52년이었다.
영조와 소녀의 문답은 이랬다. 영조의 물음에 소녀는 망설임없이 답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이 무엇인가”
“인심이 가장 깊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엇이냐”
“목화입니다”
“이유가 뭐엇인가”
“목화는 비록 멋과 향기는 빼어나지 않으나 실을 짜 백성들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꽃이니 가장 아름답습니다.”
“고개 중에 가장 어려운 고개는 무엇인가”
“보리고개입니다. 춘궁기에 보리 익을 때까지 견디는 고비는 겪어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영조는 소녀의 깊은 생각과 영특함에 감탄했다. 이 이야기는 영조가 계비인 정순왕후를 간택할 때 일화다. 조선 후기 야사를 기록한 ‘대동기문’에 실린 내용이다.
정순왕후는 1745년 태어나 15살 때 51세 연상인 당시 66세인 영조와 혼인했다. 조선 개국이후 가장 나이 차이가 많은 혼인이었다.
영조는 1757년, 정비인 정성왕후(貞聖王后)가 승하하자 부왕인 숙종의 유지에 따라 후궁들 중에서 새 왕비(王妃)를 책봉하고 정식 중전간택을 통해 김한구의 딸인 정순왕후를 새 왕비(王妃)로 정해 창경궁에서 혼례를 올렸다.
혼례당시 정순왕후는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와 며느리인 혜경궁 홍씨보다 10살이나 어렸다.
정순왕후 생가(사진)는 서산시 음양면 유계리에 있다. 개심사에서 생가까지는 20여분 걸렸다. 생가는 큰 길에서 1km쯤 샛길로 들어가자 길가에 있었다. 1988년 8월 30일 충남도기념물 제68호로 지정했다.
생가는 아득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생가 앞에 300년생 느티나무(사진)가 그 말없이 서 있다.
생가 앞에 대문이 열려 있으면 들어와도 좋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마침 문이 열려 있기에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는 말끔히 정돈했고 큰 향나무(사진)와 꽃나무, 수석들로 정원을 아름답게 조성했다
우리가 간 날은 내부 수리중이었다. 공사 중이어서 안채까지는 들어가지 못했다. 조용히 생가 주변을 둘러보고 발길을 돌렸다. 그 시절 인물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발자취는 뒷사람들을 부른다. 우리도 역사의 손짓에 따라 그곳에 간 것이다.
세월은 물처럼 흐르지만 역사는 살아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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