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민자당 후보의 경제 분야 대선 공약은 한이헌 경제보좌역(사진. 뉴시스. 청와대 경제수석, 15대 국회의원, 기술보증기금 이사장 역임, 현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교장) 등이 주도해 만들었다. 교통체신 단체는 양정규 의원(국회 교체위원장 역임, 현 헌정회장)이 담당했다.
대선공약 중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한다는 것이었다. 특정부처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민자당은 그해 8월 11일 33명의 위원으로 대선정책공약개발특별위원회(위원장 황인성)를 발족했다. 특위는 4개 소위윈회와 실무기획단으로 구성했다. 이들은 그해 10월말까지 분야별 대선공약을 개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경제 분야, 즉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하는 업무는 제2소위원회 소관이었다. 2소위원장은 나웅배 전 경제부총리가 맡았다. 위원으로는 금진호(전 상공부장관), 이명박(현 대통령), 서상목(전 보건복지부 장관), 김만제(전 부총리), 김식(전 농림수산부장관), 박재윤 후보특보, 한이헌 경제 보좌역 등 7명. 쟁쟁한 멤버들이었다.
김영삼 후보의 ‘경제 가정교사’ 역할을 했고 정보통신부 개편 공약을 주도했던 한이헌 경제보좌역의 증언.
“김 후보는 민주화 투사로 정치나 통합의 리더십은 자타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경제나 정보통신분야는 잘 몰랐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정치만 했으니 모를 수밖에 없지요. 체신부는 우편배달이나 전화교환이란 인식이 강했어요. 정보화를 주도할 부처로 체신부는 적합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정보통신부 신설을 공약에 넣었습니다.”
1
992년 대선 당시 공약 기획에는 문민정부 출범 후 청와대 첫 정책수석으로 내정됐다가 장인의 전력이 문제가 돼 자신 사퇴한 전병민씨(현 한국정책연구원 고문)의 역할도 컸다. 그는 김 후보의 사조직인 ‘임펙트코리아’를 이끌었다.
청와대 정무, 홍보수석과 문화체육부장관을 지낸 주돈식씨는 “그 팀이 선거를 지원하고 선거공약도 정리했다”고 증언했다.
경제관료로 잘 나가던 한이헌 씨가 김영삼 후보의 경제가정교사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경남 김해 출신으로 행정고시 7회에 합격한 그는 경제기획원에서 줄곤 근무했고 1989년 조순 부총리(전 서울시장, 서울대 명예교수) 아래서 기획국장으로 일했다. 그는 금융실명제와 토지공개념제도 도입 등을 실무 지휘한 개혁파 관료였다.
노태우 정부는 당초 1990년 1월부터 금융실명제를 실시한다는 방침이었다. 조 부총리는 이런 개혁정책을 힘차게 추진했다. 이런 정책에 민자당 이승윤 정책위의장과 경제계가 강력 반대했다. 그로 인해 1990년 3월 17일 경제 개혁을 주도하던 조순 부총리와 문희갑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경질됐다. 그리고 경제 부총리에 이승윤 민자당 정책위의장이 발탁됐다.
개각 며칠 후, 퇴근 무렵이었다.
새로 부임한 이진설 차관(전 건설교통부장관) 이 한 기획국장을 불렀다. 이 차관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 머뭇했다.
“무슨 일입니까?”
“한 국장, 기획국장을 그만뒀으면 좋겠어요. 이번 인사가 문책성인데 실무국장인 한 국장에게 책임을 안 물을 수가 없소. 위에서 지침을 받았소.”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전보시킨다면 그 결과에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말이 안됩니다. 금융실명제는 제가 사무관, 과장 시절 강경식씨(전 부총리)나 차관님 등이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놓고 그걸 추진한 저를 문책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로 파견나가라는 제안을 거절하고 민자당 경제 전문위원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경제기획원을 떠나 1990년 4월부터 민자당 전문위원으로 나갔다.
2급에서 1급으로 직급은 올라갔으나 그한테는 좌천이었다.
정보통신부 그 시작과 끝<20> (0) | 2010.07.17 |
---|---|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19> (0) | 2010.07.15 |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17> (0) | 2010.07.07 |
정보통신부-그 시작과 끝<16> (0) | 2010.07.02 |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15> (0) | 2010.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