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부는 이 법안을 그해 7월 임시국회에 제출해 통과되는 대로 관계 부처 공무원 등으로 공사설립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착착 진행되는 법은 아니었다. 정통부의 구상은 그해 9월 4일 오후 열린 당정협의에서 브레이크가 걸리고 말았다. 부처 간 이견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게 공사화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민자당은 이날 정보통신부 업무중 우편-체신금융 분야를 분리해 체신공사를 설립, 전담토록 하는 한국체신공사법 제정안에 대한 보고를 받고 ‘문제가 있다’며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처리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민자당은 체신공사 설립이 철도청 공사화처럼 부채문제 등이 장애가 되지는 않지만, 공사화에 따른 경영효율성 제고와 공무원들의 신분변동으로 인한 불안 해소 등에 관해 좀더 치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정협의에는 민자당 김종호정책위의장(내무부장관 역임)과 홍재형부총리겸 재경원장관(현 국회부의장), 경상현 장관 대신 이계철 정통부차관(한국통신사장 역임) 등이 참석했다. 재경원은 정통부의 공사설립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경상현 장관의 기억.
“당정 회의에 제가 참석하지 못하고 이 차관이 대신 나갔습니다. 당정 협의과정에서 공사설립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많아 국회통과를 보류하기로 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이 국장의 설명.
“ 재경원이 체신공사 설립에 재검토 의견을 냈습니다. 이는 사실상 반대입장이었습니다. 체신공사의 금융사업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별정우체국도 쟁점이 됐습니다. 물론 한국통신 노사파업사태이후 노사문제도 고려사항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총무처나 통상산업부, 법무부 등은 별다른 이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통부는 공사화설립이 보류되자 몇 가지 대안을 검토했다. 크게 3가지 안이었다.
특례법을 제정해 기능이 보강된 중앙부처형태의 조직을 만드는 방안과 특례법 제정으로 자율성이 부여된 외청(外廳)을 신설하는 방안, 그리고 체신공사를 계속 추진하는 방안 등이었다. 체신공사 추진의 경우 설립법 제정이 늦어져 98년이나 돼야 체신공사화는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정통부는 체신공사화 백지화 방침에 따라 사무국 조직을 축소했다. 기존 3개 반을 제도개선반과 품질개선반의 2개 반으로 줄였다. 실무책임자인 이 국장도 1996년 8월 20일 경북체신청장으로 발령이 났다. 그는 현재 체공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후 정통부는 우정사업본부특례법을 제정해 2000년 7월 1일 우정사업본부를 발족했다.
이명박정부가 출범하면서 정통부를 폐지하자 우정사업본부는 지식경제부 산하로 이관됐다. 우정사업본부(본부장 남궁민)는 우편업무 외에 금융기관으로서 서민의 안전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평가다. 자금운용규모는 약 80조원이다.
그러나 우정사업공사화는 정치지형(地形)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재등장할 수 있는 휴화산(休火山)과 같은 사안이다. 체신노조측의 거센 반발로 번번이 무산되긴 했으나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우정사업본부를 공사화 형태로 변경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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