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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69>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1. 1. 1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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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신공사 백지화<1>

 

1996년 1월8일.

정보통신부는 새해 주요 업무계획에서 체신공사 설립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체신공사 설립은 정부가 개혁적 차원에서 3년여 준비해온 대통령 공약사항이었다. 지난 95년 체신공사설립법(안)을 마련, 입법예고까지 했다. 이런 정책을 공사(公社)형 또는 기업관청형으로 재검토하겠다는 것이었다. 체신공사의 백지화를 의미했다.


이틀 후 인 1월10일.

정통부는 이런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석채 장관의 재검토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이 장관의 체신공사 설립에 관한 입장은 무엇이었을까. 정통부 고위관계자 A씨의 전언

“이 장관은 현행 공기업 규제제도 아래서는 공사화를 해도 경영지도와 임금가이드라인 등 각종 규제에다 인센티브 부여가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노조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해 반대 입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체신공사 설립은 김영삼 대통령이 민자당 후보시절 발표한 정보통신분야 6대 공약사항 중 하나였다. 대선후보 시절 김대통령은 전국 우체국을 전산화해 지역 정보화를 촉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세부 항목에 우정공사화가 들어 있었다.


그래서인가. 김 대통령은 93년과 94년 체신부의 새해 업무보고시 우정사업에 관한 지시를 빠트리지 않았다.

“우정사업의 서비스 질도 높이고 경영을 합리화하는 방안을 마련해 주기 바람.(1993년 3.31 대통령지시사항)”

“우정공사설립을 계기로 110년의 역사를 지닌 체신부의 기능과 역할도 이제는 재검토해야 함(1994년 1월 13 대통령지시사항)”


1994년 1월13일.

윤동윤 체신부장관(현 한국IT리더스포럼 회장)은 이날 청와대에서 체신부의 새해 주요업무계획을 보고했다. 윤 장관은 “우정사업의 경영쇄신 및 자립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97년에 우정공사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그해 2월 5일.

체신부는 우정업무와 체신금융 업무를 분리 전담할 우정공사 설립을 위한 구체안을 발표했다. 이 안에 따르면 97년 1월 우정공사를 발족한다는 목표아래 설립추진단을 2월중 발족키로 했다. 추진단은 단장을 비롯 15명으로 구성해 공사법인 및 우편관련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회계관계 기초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체신부는 94년말까지 공사업 기본법 및 사업법의 정부안을 확정짓고 95년에 공사화 관련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어 하위 법령정비작업을 추진한 다음 96년에 공사조직 회계 분리 및 각종 사규 약관 개정 등을 추가로 마련하기로 했다.


총무처와 인사협의가 지연되는 바람에 체신부는 1994년 4월7일 우정공사설립추진반장을 구성했다. 반장에 박병호 서기관(서울 중앙우체국장 역임)을 임명했다. 사무관 2명과 일반직원 등으로 추진반을 구성해 서울광화문 우체국 5층에서 곧바로 업무를 시작했다.


장복수 사무관(서울중앙우체국장 역임)의 기억.

“반장을 포함해 전체 인력이 10명 이내였습니다. 파견근무형태였어요. 공사설립추진위원회 사무국설치를 위한 준비작업을 했습니다.”


1994년 8월 22일 오전10시 반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KOEX)에서 만국우편연합(UPU) 제21차 총회가 열렸다. 이날 UPU총회에는 김영삼 대통령과 윤동윤 체신부장관을 비롯해 정부 관계자와 각국 대표단, UPU국제기구대표단 등 모두 1천3백여명이 참석했다.

이 총회는 10개국어로 동시 통역해 국내에서 열린 회의사상 전례없는 기록을 남겼다.


김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정부는 우정(郵政)사업의 질적 도약을 위해 97년부터 우정기구를 공사화할 계획"이라며 "이번 서울총회가 남북간에 우편과 통신의 교류를 촉진시켜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UPU총회에 참석한뒤 종합전시장 1층 태평양관에서 열리고 있는 ‘필라코리아 94 세계우편전시회’ 를 관람하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체신부는 김 대통령의 연이은 우정공사설립 발언에 공사화를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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