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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68>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1. 1. 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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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월 중순 어느날.

 

이석채 정통부 장관은 청와대 본관 2층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섰다. 대통령 집무실은 교실만큼 넓었다. CDMA문제를 결론내기 위해 이 장관은 대통령 독대를 요청했던 것이다.

 

이 장관의 기억.

“김 대통령이 저 만큼 떨어져 혼자 앉아 계셨습니다. 그래서 ‘각하 가까이 가서 보고드리겠습니다’하고 책상 앞으로 다가갔어요. ”


그는 CDMA문제에 관해 자신이 내린 결론을 김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각하, 걱정하시는 CDMA문제를 검토한 결과 현행대로 추진하는 게 옳다고 판단합니다.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CDMA상용화를 추진하는 것입니다. CDMA가 성공하면 이는 세계최초입니다. 이 일은 각하와 문민정부의 큰 업적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신세기통신과 미국 측의 요구대로 TDMA를 복수로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그동안 1천억원을 투입해 개발해 온 CDMA는 사장(死藏)될 수 있습니다. CDMA를 포기하면 정통부장관이 사표를 낸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닙니다. 정권차원의 문제로 비화해 각하에게 화가 미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CDMA는 현행대로 추진하는 게 좋겠습니다. 실패하면 장관인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이 장관의 보고를 듣던 김 대통령이 잠시 생각하다가 그 자리에서 결론를 내렸다.

“좋소, 이 장관 소신대로 하시오. 그대신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요..”


대통령의 그 말 한마디로 CDMA를 고집하지 말라는 청와대의 오더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CDMA가 한국 세계ICT 역사를 새로 쓰게 하는 마지막 고비를 넘는 순간이었다.


만약 이 장관이 이런 논리로 김대통령을 설득해 결심을 얻지 못했다면 한국은 ICT강국의 기치를 내걸지도 못했을지 모른다. CDMA상용화는 한국 이동통신산업의 획기적인 도약을 가져왔다. 한국은 그 여세를 몰아 IT강국의 반열에 올랐고 ICT사에 또 한번의 퀀텀점프를 기록한 것이다.


숨막히는 이런 정책반전이 있었는지를 당시 정통부 실무진들은 전혀 몰랐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어서 이 장관이 홀로 ‘외로운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정통부 전직 고위관계자의 증언.

“그 당시 상황에서 이 장관이 기존 CDMA정책을 뒤집기란 거의 불가능했어요. 이미 정통부가 CDMA를 PCS접속방식의 단일표준으로 결정했고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몇 년간 1천억원을 투입해 상용화를 추진중이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쉽게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런 현실을 파악한 이 장관이 특유의 논리로 김대통령을 설득했다고 봅니다. 여기에 정홍식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차관. LG데이콤부회장 역임)이 중간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청와대에서 10년간 ICT정책을 다뤄 정책결정의 매커니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복수표준을 선택할 경우 이미 개발한 CDMA기술마저도 사장될 수 있다고 말했을 겁니다.”


김창곤 정통부 기술심의관(정통부 차관역임. 현 LG유플러스 고문)의 회고.

“그 당시는 그런 사실을 전혀 전혀 몰랐습니다. 정통부가 CDMA를 단일표준으로 확정한 상태여서 그대로 가는 줄 알고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그런데 이 장관이 물러나고 몇 년이 지난 후 어느 사석(私席)에서 이 장관이 그런 말씀을 하는 걸 들었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6년간 CDMA개술 개발과 상용화 실무를 담당했던 정통부 신용섭 연구개발과장(현 방송통신위원회 방통융합실장)의 말.

“그런 낌새조차 채지 못했습니다. 그당시는 CDMA상용화가 가장 시급했습니다. 다만 이 장관께서 ‘왜 CDMA를 단일표준으로 해야 하느냐’ ‘자동차 부품도 시제품이 나온 뒤 표준을 삼는데 왜 시제품도 나오지 않았는데 표준으로 했느냐’ 는 등의 질문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CMDA단일화를 저지하라는 청와대의 지시를 받은 이 장관이 오히려 CDMA를 살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었다. 그런 정책 결정이 CMDA세계 최초 상용화라는 화려한 금자탑을 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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