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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182>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2. 4. 5.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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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건 새 역사의 문을 활짝 여는 주역은 사람이다.

그래서 유사이래 인재양성은 국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였다.

 

1996년 11월 8일.

초겨울 바람에 노란 은행잎이 나뭇가지 끝에서 파르르 떨고 있었다.

정보통신부는 이날 범정부 차원의 ‘ 정보통신 전문인력양성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의 줄기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보통신 전문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모든 부처가 인력 양성에 나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일환으로 IT특성화 대학인 정보통신전문대학원을 설립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정통부가 기회있을 때마다 밝힌 계획이었다.

이런 대책을 발표하자 각 부처별 반응은 다양했다. 가장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부처는 교육부(현 교육과학기술부)였다. 정부 부처 중 가장 보수적인 조직이라는 교육부는 자존심이 상했다.

 

“이젠, 정보통신부가 교육업무까지 관여하나

당시 교육부 대학교육정책관실의 K과장은 “결코 유쾌한 기억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정통부가 정보통신 전문인력양성이라는 제한된 정책이긴 하지만 교육업무를 총괄하는 교육부입장에서는 마치 영역을 침범당한 느낌이 들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는 “당시 지식정보화를 추진하는 정통부에 대한 인기가 높아 초임 사무관들이 선호하는 부처였다.”면서 “김영삼 대통령까지 정보화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해 교육부가 드러내 놓고 반발할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정통부가 발표한 ‘정보통신 전문인력양성대책’의 내용이 뭐길래 교육부의 반응이 시큰둥했을까. 각 부처별 역할을 분담시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이의 시행 및 조정, 지원을 하는 총괄부처가 정통부였다. 반면 교육부는 학교 교육만 담당키로 했다. 국가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교육부가 마치 정통부의 통제를 받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당시 정통부 류필계 기술기획과장(정통부 정책홍보관리본부장역임. 현 LG유플러스 부사장)의 증언.

“당시 국가정보화의 급진전과 신규통신사업자 시장진출 등으로 정보통신 전문인력의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그러나 각 대학의 정보통신관련 학과는 소수여서 정보통신분야 인력난이 심각했습니다. 특히 석사와 박사 인력이 모자라 인력양성이 시급했습니다. 그 무렵, 삼성과 현대, 대우,LG 등 업계의 의견도 수렴했는데 한결같이 정부가 전문인력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부가 파악한 정보통신관련 학과 실태조사결과를 보면 전국 11개 교육대학중 컴퓨터심화과정을 개설해 운영중인 대학은 2개교에 불과했다. 전국 42개 사범대학중 14개교만이 컴퓨터교육과를 운영 중이었다. 이에 따라 전국 초중고교 교사중 컴퓨터 전문과정 교육을 이수한 교사는 7천800여명으로 1개 학교당 평균 0.68명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그해 9월3일 경제장관간담회에서 정보통신산업종합대팩과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범정부차원의 지원체계를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한승수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국무총리 역임. 현 김앤장 고문)은 이날 오후2시 과천 재경원회의실에서 경제장관간담회를 열어 ‘최근 경제상황과 향후 정책방향’에 관해 논의한 후 향후 경제운영방안을 확정했다. 정통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래유망산업인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을 위한 종합대책’을 11월말까지 수립키로 했다. 정보통신기반구축을 위해 정보통신게임과 소프트웨어 산업을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정보통신전문인력 양성대책도 수립키로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그해 10월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정보화추진확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세계수준의 기술이 확보되도록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예나 지금이나 대통령의 말은 곧 통치행위다. 그런 통치행위를 정책으로 뒷받침하는 일은 해당부처의 중요한 업무중의 하나다.

 

강봉균 장관(재경부장관 역임. 현 민주당 국회의원역임)은 이런 대책수립에 직접 관여해 내용을 꼼꼼하게 챙겼다. 강 장관은 자타가 인정하는 당대 최고의 기획통이었다. 그런 강 장관이 관계전문가 토론회를 두 번이나 주재해 대책을 수립했다. 그는 공직에 몸담기전 한때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었다. 그는 전문 인력양성에 관해 소신이 뚜렸했고 관심도 각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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