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3월25일 오전 9시30분.
데이콤은 서울 남대문로 힐톤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제2시내전화사업자 컨소시업참여 희망 업체를 대상으로 사업설명회(사진)를 열었다. 설명회에는 4백여 국내 기업체 대표 및 관계자들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다.
데이콤는 이날 1조원 자본금의 컨소시업을 구성해 사업권을 따내면 오는 2004년까지 교환기와 전송선로, 단말기, 부대설비 등에 투자비는 6조6천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데이콤은 시내전화 시장은 1가구 2전화시대에 접어들고 각종 서비스가 늘어나 1996년 3조4천억원 규모에서 2004년에는 11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데이콤은 사업계획서에서 컨소시엄은 3백-5백개로 구성하고 지분은 주요 주주에 40%, 중견 및 중소주주에 각각 30%를 배정하기로 했다. 서비스는 서울과 부산, 인천 등 5개 광역시와 제주 지역에서 우선 시작하고 2001년에 중소도시, 2003년까지 전국 읍.면 지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시내전화서비스는 음싱과 데이터 통신 위주에서 화상전화와 원격교육, 주문형 정보제공, 홈쇼핑 등 수요에 대비해 광케이불과 케이블TV망 무선가입자망으로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때까지 데이콤 주도의 컨소시엄 구성이 대세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튼날인 3월26일. 데이콤 대세론에 하루만에 복병이 등장했다.
삼보컴퓨터와 한국전력이 대주주이며 전용회선 임대사업자인 두루넷이 독자 컨소시업을 구성해 제2시내전화 사업권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두루넷은 국내 최초의 고속인터넷서비스업체였다. 제2시내전화 사업권이 데이콤과 두루넷의 양자 구도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두루넷은 “자본금은 데이콤의 절반인 5천억원으로 하며 대기업이 관심을 보이는 지역분활에 대해서도 지역본부에 권한을 대폭 위임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들의 참여를 이끌기 위해 데이콤과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두루넷은 “컨소시엄 구성은 신기술이나 운용기술, 재무능력을 갖춘 기업을 제1그룹으로 선정해 30%의 지분을 배정하고 제2그룹은 지역연고 영업망을 보유한 기업이나 기간통신사업자, 통신기반시설을 보유한 기업으로 구성해 40%의 지분을, 제3그룹은 케이블TV 영업기반을 보유한 기업과 유망 중소기업으로 구성해 30%의 지분을 배정하겠다”고 밝혔다.
두루넷은 서진구 부사장(코인텍 대표 역임)이 사업추진반장을 맡고 김도진 나래이동통신 상무(두루넷쇼핑 대표이사 역임)가 기술분야 책임자로 추진반에 합류했다.
두루넷은 4월2일 오후 2시 서울 인터컨티넨탈회텔 그랜드볼룸에서 컨소시엄 구성을 위한 사업설명회를 개최했다.
두루넷은 한전과 대기업을 주요 주주로 해 5천억원 규모의 자본금으로 사업권을 획득하면 1999년부터 시내전화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두루넷에는 삼보컴퓨터가 지분의 10%를 한국전력이 9.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데이콤과 두루넷은 독자 컨소시엄 구성을 추진하면서도 단일화를 위한 막후협상을 벌였다. 두루넷은 처음 데이콤과 같은 10%지분을 요구했으나 데이콤은 이를 거부했다.
데이콤은 4월4일 자사 컨시소엄 구성에 참여를 희망하는 업체들의 선청을 마감했다.
집계 결과 삼성과 현대, 대우,한화,일진 등 대기업과 SK텔레콤, 온세통신 등 기간통신사업자와 성미전자, 핸디소프트, 텔슨전자 등 중견 중소기업 등 4백여개 업체가 신청했다.
데이콤은 4월 10일까지 컨소시엄 구성을 완료했다. 이어 11일부터 15일까지 참여기업들과 지분에 관한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했다. 데이콤과 두루넷은 루비콘강을 건넌 셈이었다.
4월 30일 오후.
반전드라마가 연출됐다. 독자 컨소시엄 구성을 추진했던 두루넷과 데이콤이 외나무 줄다리기 협상에서 막판에 지분배정에 합의점을 찾아 동반자가 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두루넷 이용태 회장(삼보컴퓨터회장 역임. 현 숙명학원 이사장)의 최근 증언. 그는 당시 시내전화 경쟁구도는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제2시내전화사업자 허가는 잘한 통신정책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당시 한국통신(현 KT)은 서비스나 통화품질, 통신료 등에서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경쟁서비스를 도입한다고 해서 소비자에게 별 이익이 없었어요. 두루넷이 독자 컨소시엄 구성을 추진하다 데이콤 콘시시엄에 참여하면서도 걱정이 많았어요. 그게 나중에 현실이 됐어요. 한국전력이 통신사업을 한다고 하면서 결국 두루넷은 망했잖아요.”
곽치영 데이콤 사장(16대 국회의원. 한국위치정보 회장 역임)의 당시 회고.
“국가적 차원에서 제2시내전화서업이 제대로 추진되려면 자가통신망을 보유한 한국전력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데이콤은 두루넷과 한국전력에 공동 제2주주 지분으로 7%씩을 각각 배정했다. 이에 따라 컨소시엄의 주요 주주사 지분은 데이콤이 10%, 한전과 두루넷이 7%, 삼성과 현대, 대우, SK텔리콤이 6%씩이었다.
데이콤은 신규통신사업자 마감일인 이날 오후 늦게 전체 지분의 48%를 차지한 7개주요 주주사를 포함해 모두 4백44개 주주사로 컨소시엄을 구성,‘하나로통신(가칭)’이라는 법인으로 정통부에 시내전화사업허가를 신청했다. 단독이어서 사실상 사업권을 획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시로서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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