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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214>-하나로통신 위기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2. 8. 2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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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7월 하나로통신은 3차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권택민 하나로통신 경영기획실장(현 한국콘덴츠진흥원 부원장)의 말.

“설비투자에 따른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해 7월 27일 유상증자를 실시해 6000억원을 확보했습니다. 자본금을 1조 2000억원으로 늘렸습니다. 증자한 자금으로 설비투자를 했습니다.”

 

2000년 5월 가입자가 50만을 돌파했다.그해 12월 156만 가입자를 확보했다. 처음 목표는 100만이었다.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ADSL돌풍에 비상이 걸린 한국통신은 ISDN 대신 ADSL서비스로 사업방향을 수정했다. 두 업체 간 경쟁으로 한국인터넷 인프라는 세계최고 수준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ADSL 가입자는 급증했지만 하나로통신 경영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2000년 3,8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하나로통신은 2001년 2월 1억달러 규모의 해외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했다. 이어 10월 3000억원의 자산담보주 증권을 발행했다.

 

하나로통신은 2001년 11월 사업다각화를 위해 최고속인터넷업체인 드림라인 지분 32.18%를 매입했다. 2001년 매출은 8254억원, 경상손실은 2,441억원을 기록했다.

 

하나로통신 부채가 1조8000억원으로 늘어났다. 투자비용과 차입금 만기로 자금 유동성 위기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희망의 빛은 사라지고 시련의 먹구름이 하나로통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2002년 10월 24일.

하나로통신은 서울 리츠칼튼 호텔에서 이사회를 열고 경영진을 교체했다. 이사회는 신윤식 사장을 회장으로 선임했다. 이사회는 11월1일 파워컴 지분인수를 위해 AIG,뉴브리지 캐피털 등 해외 투자자로부터 제3자 배정방식 신주발행과 신디케이트 방식의 외자유치 계획을 승인했다.

 

2002년 하나로통신은 1조2539억원의 매출과 6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첫 흑자 기록이었다. 시장 점유율도 27.%로 확대했다.

신윤식 회장은 2003년 3월 28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해 8월5일 2대 대표이사로 윤창번 사장(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하나로통신 회장 역임, 현 김앤장 고문)이 취임했다.

윤 사장은 그해 9월 9일 서울 소공동 웨스턴조선호텔에서 뉴브리지-AIG투자 컨소시엄과 총 11억 달러 규모의 외자유치 계약을 체결했다. 이중 5억달러(5천850억원)는 신주발행을 통한 직접투자 방식이고 나머지는 신디케이트론 방식이었다.

 

2004년 7월1일.

경영권이 외국자본에 넘어간 하나로통신은 사명을 하나로텔로콤으로 바꾸고 대대적인 혁신작업에 착수했다. 임직원을 직급별로 3개 과정으로 나눠 학습교육을 실시하고 동시에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에 반발해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서 노사는 갈등에 휘말렸다.

 

2005년 2월4일 하나로텔레콤은 두루넷 인수 본계약을 체결했다.

그해 8월16일 윤창번 사장이 임기 1년을 남겨놓고 사임했다. 그는 비상근 회장으로 추대됐고 권순엽 경영총괄부사장이 사장대행으로 선임됐다.

 

그해 12월 29일 정통부는 정보통신정책심의원회(위원장 오연천) 심의를 거쳐 하나로텔레콤과 두두넷 합병을 최종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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