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길상암 명진 스님 14주기를 맞아

사찰기행

by 문성 2012. 10. 26. 16:58

본문

 

진한 물감도 세월이 지나면 흐릿하게 색이 변합니다.

죽고 못살던 연인도 세월따라 애정의 농도가 변합니다. 세월 앞에 변하지 않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며칠 전 해인사 길상암에서 보낸 편지 한통을 받았습니다.

명진 스님 열반 14주기 추모제를 알리는 편지였습니다. 벌써 14주기라니. 명진 스님과는 정말 좋은 인연이었습니다. 명진스님은 제겐 큰 이름입니다. 

 

길상암에 못 간지 4년여가 됐습니다. 길상암에는 청정함과 순진무구함, 걸림이 없는 곳입니다.

지난 2008년 여름철 그곳에 머물다가 온 후 가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마음을 '암자일기'란 책으로 엮었습니다. 

 

올해는 해인사 큰법당에서 오전 10시에 추모제를 모신다고 합니다. 해인사 주지인 선해스님은 명진스님의 상좌입니다. 선해스님은 제가 1997년 길상암에서 명진스님의 보살핌아래 요양할 무렵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선해 님은 해인사 노전소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당대 제일의 염불승인 명진스님 제자답게 선해 스님도 염불을 잘 했습니다. 염불테이프도 낼 만큼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명진스님이 열반에 든 날 아침 일이 아직도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당시 저는 휴가를 얻어 길상암에 내려갈 계획이었습니다. 여름 휴가를 길상암에서 보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날 직원 결혼식이 있어 이튼날 길상암에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가슴 설레이던 그날 길상암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명진스님이 열반에 들었다는 비보였습니다. 날벼락같은 소식이었습니다. 휴가길이 조문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새벽 안갯속을 뚫고 달려간 길상암에서 명진스님은 국화속에 묻혀 말없이 눈길만 주고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어서 오라”며 반기셨을 스님입니다. 저는 잠든 듯 편안하게 이승의 옷을 벗어버린 명진 스님에게 삼배를 드린 후 곧장 서울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스님이 떠난 길상암에 제 마음을 둘 곳이 없었습니다. 여름 한 철 머물렀던 길상암이 한순간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그 후 10여 년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만사를 내려놓고 스님 추모제에 참석했습니다. 새벽에 출발해 추모제에 참석한 후 서울로 되돌아 오는 강행군이었습니다.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새털같이 가벼웠습니다. 몇해 전부터 추모제에 가지 못했습니다. 세속의 일이 추모제를 눌렀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8년 여름 다시 찾은 길상암은 모습이 크게 변했습니다. 염불당과 종각, 명진스님 사리탑 불사를 해 도량이 달라졌습니다. 주지는 광해 스님입니다. 그는 명진스님의 가르침처럼 불사하고 염불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길상암은 영험한 도량이다. 뭘 하겠다고 생각하고 기도하면 딱 그만큼 이루게 해 주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내려다 본 동네 공원의 나무들이 오색 단풍으로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해인사 옥류동 계곡 단풍은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지금은 해인사 소릿길이 개통돼 인기라고 합니다.

 

길상암의 저녁 불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 길상암은 늘 그리움의 상징입니다. 외롭고 허전할 때 그림움의 대상이 있다는 건 행복합니다. 제 차속에는 명진 스님의 염불테이프가 있습니다. 중요한 일이 있거나 마음의 동요가 심할 염불을 듣습니다.법문 테이프도 하나 있습니다. 길상암에 머물다 집으로 오는 날 아침 스님이 주신 법문입니다.

 

간혹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 명진 스님이 아직까지 살아 계시면 저는 유발상좌가 됐을 겁니다.  시절인연이란 묘합니다. 14년 전 길상암에서 제 육신을 추스릴 때 이별을 생각했더라면 명진 스님과 더 뜻있는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지금도 후회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명진 스님이 제게 “깁밥을 싸가지고 몇 군데 사찰순례를 가자”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일정을 뒤로 잡았습니다. 얼마 후 명진 스님은 열반에 드셨습니다. 후회했지만 뒤늦었습니다. 그 후 저는 아내와 스님이 가보자던 절을 다녀왔습니다. 그리움과 아쉬움에 법당에 설 때마다 눈물이 핑돌았습니다. "왜 이 절에 오자고 했을까?". 저는 아직 그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명진 스님은 늘 “기도하면 업장소멸하고 죄멸복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금강경을 열심히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명진스님은 실제 24년의 기도끝에 부처님 진신사리 36과를 길상암에 모셨습니다.

 

길상암은 관음 기도도량으로 유명합니다. 명진 스님이 주석하고 계실 때는 하루종일 염불소리와 기도 소리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광해 스님이 계시는 지금도 그럴 것입니다.

 

저는 마음이 울적할 때면 길상암 사진을 자주 봅니다. 도량 곳곳에 저와 얽힌 추억이 꽃씨처럼 숨어 있습니다. 새벽 예불하던 법당과 요사채며, 공양간, 계단 어느 것 하나 추억이 없는 게 없습니다.

 

계절은 다시오고 단풍이 산하를 곱게 물들어도 한 번 떠난 인연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마치 고향집 안방 같고 어머니 품안 같은 곳이  바로 길상암입니다.

 

 

오늘 길상암에는 많은 신도들이 모여 명진 스님을 추모하셨을 겁니다. 작은 인연도 소중한 인연으로 만들며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아름다운 단풍 다음에는 자연으로 회귀하는 슬픈 이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추억은 무상입니다. 그저 가슴속에 나만의 형상이 있습니다. 이 가을에 마음은 길상암을 향해 달려 갑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