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저려왔다.
애띤 얼굴의 한 소녀의 처연한 뒷모습 때문이다. 부모 잘못 만나서 인가. 아니면 세상 탓인가.
큰 아이가 애써 마련한 1일 기차여행 코스 길에 아내와 같이 세 식구가 고창 선운사와 도솔암에 들려 참배한 후 정읍 역앞에서울행 KTX를 기다렸다. 작은 아이는 회사 일로 빠졌다. 천년 고찰 선운사와 지장성지 도솔암은 관광객이 많앗다.선운사 단풍은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즐거운 가족 여행이었다. 아내가 가장 좋아했다.
정읍 역앞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역 앞 버섯탕집으로 들어섰다. 자리에 앉자 애띤 소녀가 다가와 음식 주문을 받았다. 초행이어서 음식에 대해 이것 저것 물었다. 나이는 20살이나 됐을까.
그가 "처음 나와서 잘 몰라 죄송합니다. 이모님 여기좀 와 주세요"라고 외쳤다.
30대 중반의 이모라는 여인이 다가와 음식 주문을 받아갔다. 음식이 나와자 ‘이모’라는 여인이 그 소녀에게 이른바 서빙 훈련을 시켰다. 집개를 소녀에게 건네주며 ”그릇에 음식을 둘로 나눠 넣어보라“고 했다.
처음 음식점에 아르바이트를 나 온 데다 낯선 손님 앞이라 긴장한 탓인지 모든 게 서툴고 허둥댔다. 실수할 적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이런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안쓰럽기도 해 사과할 적마다 우리는 “괜찮다”며 그를 안심시켜 주었다.
40분 가량 식사를 끝내고 아내가 계산을 하고 가게 문을 나섰다. 배가 부르니 기분도 상쾌했다. 도로에 가로수 낙엽이 발밑에 밟혔다. 가는 세월의 흔적이었다.
가게를 저만큼 지나자 아내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서빙하던 그 소녀가 짤렸어. 가정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나온 것 같은데 정말 안됐네”
“무슨 소리야. 나는 못 봤는데”
사연인즉 이랬다. 아내가 계산을 하는데 그 소녀가 주인에게 죄인처럼 다가 와 “죄송합니다”라며 사과를 하더라는 것이다. 아내는 소녀가 서빙중에 실수를 해 사과를 하나보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자 주인이 “아니야 오히려 우리가 미안하네”하자 그 소녀는 고개를 숙인체 가게를 나갔다고 했다. 결론은 짤린 것이다.
한 시간 5천여원을 벌기 위해 이를 악물고 모진 삶의 현장에 뛰어들었다가 해고된 것이다. 그 음식점을 떠나는 애띤 소녀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없을 것이다. 세상 인심의 각박함을 절감했을 것이다. 부모에 대한 원망, 자신에 대한 회한, 창피함 등. 오만가지 생각이 온통 애띤 소녀를 짓눌렀을 것이다. 어린 저 소녀는 어디서 다시 르바이트 자리를 알아 볼까. 그런 소녀의 처지가 가슴을 저리게 했다. 천진한 소녀의 가슴에 나라 살림살이가 못을 박다니. 그가 무슨 잘못을 했나.
그 순간, 저녁밥이 내 명치끝에 탁 멈췄다. 아, 기막힌 이 삶의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일이 그 소녀일이 아니니 더 큰 일이다.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현실의 벽앞에서 고뇌할까.
입만 열면 경제살리기를 외치는 대선 후보들이 이런 처연한 현실을 제대로 알기나 할까. 이들이 정말 경제를 살려 이들의 얼굴에 활짝 웃음이 솟아나게 할 수 있을까. 대선 예비 후보중 아르바이트를 해 본 이가 있는가. 수십, 수백억원 씩을 제돈처럼 호화 청사를 짓거나 자신의 업적을 남기는 일에 펑펑 퍼 붙는 적지 않은 수의 지자체장들이 진정한 주민의 대표자인가. 자신 수당과 연봉을 올리는데는 안면몰수하는 국회의원들이 정녕 민의의 대변자인가. 이들이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지 못해 눈물짓고 돌아가는 그 소년의 천갈래 만갈래 찢어지는 상처난 마음을 헤아리기나 할까.
누가 그 소녀의 헤진 가슴을 다둑이며 기가 막힌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까. 길잃는 경제살리기 정책만 난무하는 지금 우리 현실이 민심이 바닥을 헤메게 하는 것은 아닌가. 정말 우울하고 답답한 저녁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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