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7월 10일 오후.
김대중 대통령은 부처별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컴퓨터 SW 불법복제는 관련법을 고쳐서라도 벌금을 많이 내도록 해야 한다”며 “불법복제 차단을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하라”고 배순훈 정통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김 대통령은 “한컴의 경영부실로 인해 한글 개발과 공급이 차질을 빚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토록 하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한 배 장관의 증언.
“대통령께서 `한글이 없어진다니 이거 곤란하지 않느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이 일은 시장에 맡겨야 합니다. 주위에서 뭐라고 하면 배 장관에게 물어보라고 하십시오`라고 말씀드렸어요.”
그해 7월 20일 10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이찬진 한컴 사장과 이민화 한글 지키기 운동본부장은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한컴이 운동본부의 100억원 규모 투자 제의를 받아들여 한글 사업을 계속하기로 합의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찬진 사장이 용단을 내려 생각을 바꾼 것이다.
양측은 합의서를 통해 한컴은 △MS와 투자유치 협상을 중단하고 △운동본부로부터 100억원 투자를 유치하며 △운동본부와 공동으로 SW 정품 사용운동 및 100만 회원가입 운동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찬진 사장은 “국민의 한글에 대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범국민적인 운동에 부담을 갖고 있던 중 한글 지키기 운동본부의 제안을 수용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민화 회장은 “이번 한컴의 결정은 400만 한글 사용자의 소비자 주권의식에 기초한 공정거래질서 회복이자 한글 퇴출에 따른 1조원 국부의 누출 방지며 한국 SW 발전의 초석을 위한 결의”라고 강조했다.
한컴은 이 회견에 앞서 MS 측에 투자 요청 철회를 통보했다.
이찬진 사장의 증언.
“한컴의 투자 요청 철회에 MS의 법적 문제 제기는 없었습니다. 하고 싶어도 당시 분위기상 MS가 한컴에 법적인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한글 살리기 운동의 높은 열기에 비해 성금액은 기대 이하였다.
이민화 회장의 말.
“민간 모금액은 7억원에 불과했습니다. 조현정 부회장과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가 5억원과 3억원을 투자해 15억원이 전부였습니다. 여기저기서 5억원을 더 모았어요. 나머지는 긴급 소집한 메디슨 이사회에서 50억원을 한컴에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메디슨이 비의료기업에 유일하게 투자한 일입니다. 모두 70억원을 모금했습니다.”
한컴 새 사장은 약속한 대로 공모했다. 그해 7월 24일까지 모두 30명이 공모에 참여했다.
최종 2명을 선발해 7월 26일 최종 면접을 실시했다. 전하진 지오이월드 사장(현 국회의원)과 이유재씨(게임네트 대표 역임)였다. 심사위원은 이민화 회장을 비롯해 조현정, 변대규, 장홍순, 이찬진씨가 맡았다. 이찬진 사장은 심사에 불참했다. 심사위원들은 27일 새벽까지 두 사람을 상대로 한컴 회생 방안과 미래 비전을 물었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그해 7월 27일.
새 사장으로 전하진씨를 선임했다. 경쟁했던 이유재씨는 한컴 사외이사로 경영에 참여했다.
한컴은 전 사장을 중심으로 향후 제품 개발계획과 100만 회원 유치운동 등 마케팅 전략을 구체화하고 본격적인 제2의 신화창조에 도전했다. 노력 끝에 한컴은 살아났다.
한컴은 전하진 사장에 이어 최승돈 직무대행, 김근, 류한웅, 백종진, 김수진, 김영익을 거쳐 2010년부터 이흥구 사장체제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컴은 지난해 659억원의 매출과 24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한컴 사태는 벤처인에게 `한 우물을 파라`는 점과 잘나갈 때 위기를 생각하라는 두 가지 교훈을 남겼다. 세월이 물처럼 흘렀지만 벤처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컴의 아픈 추억이다.
이현덕의 정보통신부<312> 5대그룹 구조조정 빌딜 (0) | 2014.07.01 |
---|---|
이현덕의 정보통신부<311> 반도체 빅딜 (0) | 2014.06.24 |
이현덕의 정보통신부<309>이민화 "한컴인수하겠다" 발표 (0) | 2014.06.10 |
이현덕의 정보통신부<308>벤처협회 "한국지키기 운동" (0) | 2014.06.03 |
이현덕의 정보통신부<307>-한글살리기 운동 (0) | 2014.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