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이 IMF 위기 극복에 총력을 기울이던 1998년 6월 10일. 대규모 사업교환, 이른바 정부의 빅딜 추진이라는 폭탄 발언이 터져 나왔다.
김중권 대통령 비서실장(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대표 역임, 현 변호사)이 빅딜을 공론화했다. 당시 빅딜 발언을 놓고 김대중 대통령과의 교감설, 혹은 김 실장의 실수설이 나돌았다. 하지만 진실은 교감설이었다. 김 실장이 의도한 빅딜 발언이었다.
한국능률협회(회장 송인상)는 이날 오전 7시 서울 조선호텔에서 김중권 대통령 비서실장을 초청, `김대중 대통령의 국가경영철학` 이란 주제로 조찬 강연회를 열었다.
김 실장은 조찬 강연에서 새 정부의 인사정책과 공기업 혁신, 근로자 권익보호 등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했다. 그러던 김 실장이 강연 말미에 대기업 구조조정에 관해 간단히 언급했다. 하지만 핵심은 다 들어갔다. 순간 참석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기자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김 실장이 경제계에 일파만파를 불러일으킨 이른바 빅딜구상을 발표한 것이다.
“대기업 구조조정은 국가경제 운용뿐만 아니라 단위 기업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빅딜을 포함한 대기업 구조조정 계획이 금명간 발표될 것입니다. 어떤 재벌기업인지 말씀은 드릴 수 없습니다만 그 재벌은 빅딜을 상당히 우려도 하고 또 약간 거부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어제 제가 들으니까 승복을 했다고 합니다.”
김 실장이 말한 어떤 재벌기업은 LG그룹이었다. 기자들이 김 실장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의 발언은 곧 대통령의 뜻이었다.
“대기업 구조조정과 빅딜의 내용이 뭡니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김 실장은 “자세한 내용은 박태준 자민련 총재(작고, 포철회장, 국무총리 역임)에게 물어보라”며 공을 박 총재로 넘겼다. 기자들이 득달같이 박 총재에게 달려가 질문 공세를 폈다. 박 총재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나는 빅딜은커녕 스몰딜도 모른다.”
김중권 비서실장의 증언.
“당시 빅딜 발언은 의도적이었습니다. 실언(失言)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대기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하고 은밀하게 진행했습니다. 이 일은 김대중 대통령과 박태준 총재, 그리고 비서실장인 저만 아는 내용이었습니다. 청와대 수석들도 몰랐습니다. 그날 제가 발언한 것은 더 이상 대기업들이 이 일을 미루거나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어느 그룹이건 기업에 대한 애착심이 없겠습니까. 당시 박 총재에게 이 일을 물어보라고 한 것은 박 총재가 빅딜에 관해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 비서실장이 대기업 구조조정계획 발언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 방문(6월 6~14일) 중이었다. 김 실장의 빅딜 발언에 관해 김 대통령을 수행한 강봉균 청와대경제수석(정통부 장관, 재정경제부 장관 역임, 현 군산대 석좌교수)은 “사전에 논의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국내 여론이 들끊자 미국 LA에 머무는 김 대통령에게 전화해 국내 상황을 보고했다.
김 실장의 말.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충격파를 줄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발언했던 것입니다. 발언이 있자 당에서도 난리가 났어요. 그런 사실을 당에서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박태준 총재는 그런 사실을 부인했을까.
“대기업들이 호랑이 어금니 아끼듯하는 사업을 업종교환을 해야 한다”는 발언은 파장이 컸다. 이런 일은 은밀하게 외부개입 냄새를 풍기지 않고 자율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안이었다. 이런 일을 대통령 비서실장이 의도적으로 발설했으니 박 총재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박태준 총재는 빅딜에 깊숙이 관여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이미 포스코경영연구소를 통해 빅딜 안을 마련했다.
김 당선인은 1월 21일 대통령직 인수위 사무실에서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 박태준 자민련 총재를 만나 재벌총수의 개인 재산출자와 사업교환 등 재벌의 고통분담과 근본적인 개혁을 강력히 촉구한 적도 있었다.
신국환 당시 박태준 총재의 경제특보의 말.
“김 대통령이 당선 직후 경제를 잘 아는 박 총재에게 빅딜 안을 만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박 총재는 포스코경영연구소에 이 연구를 맡겨 구체적인 안을 만들었습니다. 그 내용은 중복투자를 막고 전문화 특성화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은 삼각 빅딜 구상이었습니다. 자동차는 현대, 반도체는 삼성, LG는 석유화학 이런 식이었습니다.”
신 특보는 상공부에서 수출진흥과장, 기계공업국장, 전자전기공업국장, 공업진흥청장을 거쳐 산업자원부 장관을 두 번이나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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