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코리아21은 기존 정책과는 달리 민간 스타일로 만들었다.
명칭도 사이버코리아21로 정했다. 창조적 지식 기반 국가 건설을 위한 정보화 비전이라는 부제(副題)도 신선했다. 박근혜정부의 대표 브랜드인 창조라는 말을 당시 사용했다.
당시 김대중정부는 IMF 위기 후 일자리 창출이 최대 관건이었다. 그런데 대기업 CEO 출신인 남궁 장관이 수요자 기반의 정보화 추진으로 국가 전반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점에 김 대통령은 크게 만족했다.
사이버코리아21은 시기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사이버코리아21 계획 수립은 정통부가 1년여 전부터 준비한 야심작이었다. 정통부는 그동안 추진한 초고속망을 기반으로 21세기 정보대국 진입을 위한 기반 조성계획 수립에 착수한 상태였다.
안병엽 당시 정통부 차관(정통부 장관, 민주당 국회의원 역임, 현 KAIST 초빙교수)의 증언.
“이 계획은 제가 정보화기획실장 시절에 준비를 했습니다. 국민의정부 출범에 대비해 내부적으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지시해 구체안을 마련하도록 했습니다.”
정통부는 3개월여 만에 사이버코리아21이라는 국가정보화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했다. 대형 국가정책을 단기간에 입안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안 전 차관의 회고.
“사전에 준비가 없었다면 3개월여 만에 그런 대형 국가 프로젝트를 내놓는 게 불가능합니다. 인프라와 자금계획을 다 수립하고 부처 협의를 하려면 시일이 더 필요합니다. 시작은 제가 했지만 마무리는 변재일 정보화기획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민주통합당 정책위 의장)이 했습니다.”
이 기본계획 수립에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과 한국전산원(현 한국정보사회진흥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박사들이 참여했다.
윤창번 당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부원장(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하나로텔레콤 회장 역임, 현 김앤장 고문)의 말.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손상영 정보사회연구실장(현 연구위원)과 신일순 박사(현 인하대 교수), 황주성 박사(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를 연구팀에 배치했습니다. 연구팀 총괄은 손 박사가 담당했습니다. 사이버코리아21은 정보화의 실질적인 중추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한국전산원에서 황종성 박사(현 서울시 정보화기획단장)와 김현곤 박사(현 빅데이터전략연구센터장),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하원규 박사(현 책임연구원)가 연구팀에 참여했다. 이들은 한국전산원 사무실에서 주로 작업을 했다.
손 박사의 기억.
“연구팀은 기존 ATM교환기에서 초고속인터넷으로 다양한 정보통신 서비스를 하는 데 중점을 두고 기본계획을 수립했어요. 나중 마무리 작업에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만든 기본계획안은 정통부로 넘어갔다.
이 계획을 마무리한 당시 업무 라인은 변재일 정보화기획실장과 유영환 정보기반심의관(정통부 차관·장관 역임, 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 실무총괄은 형태근 기획총괄과장(방통위 상임위원 역임, 현 동양대 석좌교수)이 담당했다. 이외에 이재홍 초고속망구축과장(전남체신청장 역임, 현 한국LP가스공업협회 부회장), 신순식 초고속망기획과장(충청체신청장, 한국부품소재투자기관협의회 부회장 역임), 이기주 정보화지원과장(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서병조 정보화제도과장(방통위 방통융합정책실장,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운영지원단장 역임) 등이 계획 입안에 참여했다. 정통부는 민간의 의견도 수차례 수렴했다.
정통부는 대통령 보고 때까지 3개월여 거의 밤을 새우며 작업했다.
남궁 장관은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민간 스타일로 일을 추진했다. 격식을 따지지 않았다. 매일 오전 출근하면 8시에 형태건 총괄과장을 집무실로 불러 업무진행 상황을 직보(直報)토록 지시했다.
형태근 당시 과장의 증언.
“정보화기획실장이 바쁠 테니까 총괄과장인 제게 매일 아침 8시 장관실에서 업무보고를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실장에게 사전에 말씀을 드리고 날마다 보고를 했어요. 남궁 장관은 기존 관행을 모두 탈피하셨습니다. 우선 명칭도 사이버코리아21로 결정하셨어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 `이렇게 해도 될까요` 했더니 `내가 책임질테니 걱정마라`고 하시더군요.”
실세인 김종필 국무총리와 이 국정원장이 이 일에 적극성을 보이자 관련부처 협의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형태근 과장은 매일 오전과 오후 각 2회씩 각 실·국 총괄과장과 회의를 했다.
남궁 장관은 청와대 보고일인 3월 1일 하루 전까지 사이버코리아21 구상을 가다듬었다.
남궁 장관은 최종 보고자료를 삼성SDS에서 만들었다. 형 과장이 실무진과 삼성SDS에 가서 밤샘작업을 했다. 남궁 장관은 30분마다 전화로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업무지시를 내렸다. 문구와 내용을 수정하고 가다듬었다.
형태근 과장의 계속된 말.
“남궁 장관이 보고일 아침에 내용을 완전 숙지해 직접 브리핑하셨습니다. 경영마인드와 수요 기반의 정책 입안을 한 것이 김 대통령을 흡족하게 했다고 봅니다.”
사이버코리아 정책 입안에 참여한 하원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박사의 말.
“남궁 장관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남궁 장관은 `이제는 디지털 불도저 시대가 온다. 내가 불도저 운전사가 되겠다”며 정보화에 열정을 다하셨습니다. 당시 500쪽 분량 방대한 내용의 사이버국토 기본계획도 보고했습니다.”
이 사이버코리아21은 그해 3월 31일 오후 4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정보화추진위원회를 거처 최종 계획을 확정했다.
4월 1일 오전 10시.
김대중 대통령이 이날 정통부 대회의실에서 남궁석 장관으로부터 국정개혁보고를 받았다.
남궁 장관은 지식정보화사회에 대비한 대책을 중심으로 사이버코리아21 등 주요 정책을 보고했다.
남궁 장관은 이후 창조적 지식 기반 국가로 가는 사이버코리아21의 가속 페달을 힘차게 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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